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Jun 03. 2020

타인의 말 한마디, 우연의 다른 말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서점은 돈을 쓰지 않고도 오래 서성거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라는 조지 오웰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틈나는 대로 시내 대형서점에 들락거렸다. 도서관도 가끔 갔지만 함부로 손때 탄 책들을 보면 내 기분까지 너덜너덜해질 때가 있다. 반면 서점은 큰 그물로 갓 끌어올린 물고기 떼처럼 신간들이 무리지어 펄떡거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반짝거리는 신간의 구애가 넘실넘실거리는 서점에 더 자주 끌렸다.      

     

그날도 약속 두어 시간 전에 나와 종각의 큰 서점에서 한동안 서성거리고 있었다. 기자로서 일상을 담은 에세이《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가 매대에 잘 있는지 내심 살펴보고 싶기도 했다. 책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신간에세이 분야에 잘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고객용 PC에서 위치를 출력해보니 그 옆 노년에세이 분야 판매대에 놓여 있었다. 내 책의 어떤 부분이 노년에게 먹힌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래도 책이 아직 서가에 비좁게 꽂혀 있지 않고 통로에 누워 있으니 다행이었다.       

근처 서가에 기대 요새 핫한 베스트셀러 한 권을 훑어 읽고 있는데 이십 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다가왔다. ‘도를 아십니까’를 질문하는 이들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애써 책에 고개를 더 박았다. 


“저기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이들은 예의바른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혹시 책 한 권을 추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를 딱 보는데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는 거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임에서 매달 책을 정해놓고 낭독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내게 추천을 받고 싶다는 거다. 나의 어딜 봐서 책을 좋아할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당시 내 후줄근한 차림새로 미뤄 볼 때 그다지 칭찬 같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들고 있던 소설에 대해 짧게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 조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이 두 청년들을 노년에세이 코너로 데리고 갔다. 사실 노년에세이에 있을 책은 절대 아니라면서 책의 하이라이트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호응이 있다고 느껴지자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요… 이거 쓴 사람이 저예요.”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놀라워했다. 그러더니 영광이라고 하면서 둘이 번갈아 가며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노년에세이 코너 앞에서 난데없이 열띤 미니 인터뷰를 하게 됐다. 이들은 내 휴대전화 번호를 요청했다. 


“다른 책도 좀 둘러보시고요.” 


나는 몇 가지 책을 더 소개해 줬다. 내 책 소개할 때와 달리 영혼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친절했다고 생각하고 이 둘과 인사하고 문학 코너로 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점 고객용 검색대에서 내 책 재고량을 확인해보니 차이가 없었다. 소개팅 때 면전에서 대차게 까인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만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까지도 우울함이 지속됐다. 내가 왜 괜히 책을 내서 나답지 않게 뻔뻔해졌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웃프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노트북 앞에 축 처져 앉아 있는데 옛 직장 동료에게서 문자가 왔다. 


“글 쓰며 살고 싶다더니 꿈을 이뤘구나. 축하해.”   


의아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에세이를 쓰게 됐는데, 그게 이십 대 때 나의 꿈이었다니.  


“내가 그런 말을? 기억 안 나는데.”


그러자 바로 메시지가 왔다. 


 “역시 특이해. 내키는 대로 살다보니 꿈을 이룬 거네.” 


내가 스쳐 지나가듯 말했을 진심을 기억하고 말해주는 것이 좋았다. 내 과거의 한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웠다. 그 말은 아마도 나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나도 놓친 과거의 나였다. 지금의 내가 모르는 나를 기억해줘서 좋았다. 잊고 있었다. 내 꿈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며 그 글들을 엮어 책 한권 내 보는 것, 딱 거기까지가 꿈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나는 꿈을 이미 이룬 것이 아닌가. 잠시 우울한 감정에 빠졌던 게 멋쩍어졌다.     


그의 짧은 메시지에 내가 그렇게 힘을 내서 지금 이 글까지 쓰게 된 것을 그는 지금까지도 모를 것이다. 말이란 건 누군가에게 다가가 어떤 감응을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선 화학반응과 유사하다. 어떤 물질과 물질이 만나서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바뀐다. 그 물질을 섞은 사람도 모든 걸 촘촘하게 예상하지 못한다. 실패였던 결과가 신기하게 의외의 성공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만큼 사는 것도 다행이다..



스물아홉 살 때였다. 그때의 나는 회사를 그만두느냐 마냐의 기로에 서 있었고, 갖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와서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때였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내 나름의 선의가 왜곡됐고, 내가 거대한 말 공장의 주재료가 되어버린 것 같았던 시기였다. 그때 회사 상사 한 명이 말했다.     


“상대에게 10만큼 줬을 때 돌려받는 건 겨우 1이야.

아니, 뭐라도 받으면 운 좋은 거고 사실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때가 많지.

그런데, 그건 그냥 주는 거야.

받을 생각은 하면 안 되는 거지.

주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하는 것, 그게 선의야.”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을 때마다 종종 그 말을 늘 떠올렸다. 빌려준 것도 아닌데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말자. 서운해 하지 말자. 그 회사를 옮기면서 선배와는 연락이 끊겼다. 이후 십 년 가까이 지나 그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헤어지기 직전에 내가 그 말을 꺼냈다. 그때 그 대화를 마음에 늘 간직하며 살았다고. 선배는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정말 놀라워했다.

 

“내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네. 고맙다.”     


자주 만나지 않고 가깝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이들에게서 받는 은은한 위로의 말들에서 나는 우연의 미학을 느낀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큰 힘을 얻는다. 기대하는 것들에 실망하고, 이렇게 기대도 안 한 이들에게서 작은 말로 위로를 얻는다.


그건 깜짝 선물 같다. 생일날 가족에게 받는 선물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작은 순간만 공유했던 지인에게서 선물을 받는다면 그 놀라움은 배가 된다. 그렇게 누군가가 나에게 무심코 남긴 좋은 말들이 흔적처럼 남아서 나를 만들어간다. 우연은 어떤 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한마디 말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를 돕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간 에세이《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더 자세한 책소개는 이 곳을 눌러서 확인해 주세요 :D


+코로나 물렀거라!





작가의 이전글 [출간소식]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