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서바이벌 가이드― 2. 내려야 할 역에선 반드시

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by 진저

예의있는 일본인이 말하는 “스미마생…” 같은 느낌으로 말하면 절대 안 돼. 문신을 하고 덩치 크고 무서운 사람이 있더라도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내릴게요!” “조금만 비켜주세요!” 라고 크고 높고 단호하게 소리쳐야 해.

무섭다고? 미동도 없이 단단히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어.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내릴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몸으로 조금씩 움직여서 한 사람이 지나갈 일인분의 공간을 기어코 만들어내 준다는 것을. “죄송한데, 조금만요...” 이렇게 물렁한 식으로 조그맣게 말하면 출근시간 내내 결코 내릴 수 없을 지도 몰라. 그냥 다음 역에서 내리자 하는 마음으로 지나치면 다음 역에서도 못 내려. 그렇다면 너의 하루는 아침부터 꽤 많이 틀어져 버리게 돼.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지 마. 아무도 네가 비집고 내린다고 해서 앙심을 품고 뒤따라 내려서 뒤통수를 가격하는 일은 없으니까. 다들 갈길 바쁜 사람들이므로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반면 생판 남의 발을 실수로 밟거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서 주워야 하거나 하는 상황은 분명하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와 굳이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때를 분명하게 구별하길 바라.

7시 23분, 관 안에 몸을 우겨 넣었다. 길고 차가운 의자가 단두대 같다. 그 위로 삼각형의 손잡이가 오랏줄처럼 드리워져 있다. 내 눈은 어느새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오랏줄에 걸고 있다. 모두 넥타이로 목을 조르거나, 주머니에 사표를 권총처럼 숨긴 사람들이다.

―윤고은, 《무중력증후군》(한겨레출판) 중에서

이전 09화지하철 서바이벌 ― 1. 지옥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