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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Jun 02. 2019

#36.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두 남녀 이야기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를 읽고.


영화로도 나온 책이라고 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올 경우에 개인적으로 책이 너무 좋을 경우엔, 그 좋았던 인상이 영화로 각인되어 또다른 인상을 주게 될까봐 영화를 잘 안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영화는 보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사실 처음 책을 중간쯤까지 읽고 독서모임에 갔을 때에는 그저 단순한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보수적이었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보수적이고 점잖은 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랑 이야기 안에 어지럽고 복잡한 두 사람의 마음을 참 잘 담아냈구나 싶었다. 그러나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내가 읽은 그 뒷부분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꼭 마지막까지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다 덮고 난 지금은, '체실비치에서'는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사랑에서 발견하게 된 각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책을 덮은 지금은 너무 마음이 아팠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마침내 해방된 것이다.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에드워드와 프로렌스 모두에게 결혼은 당시 가족에게 받은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해방을 맞이하기에 다소 그들은 서툴고 어렸고 급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간단한 심리적 반응,
너무나 평범한 것이라서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건,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즉시 인지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렇게나 오래 걸렸던 것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이 좀더 시간을 두고 많은 대화를 하고, 각자의 아픔을 드러내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것이었다. 어리숙했던 그들은 해방을 맞이함에 급급해 상황을 노력하지 않고 바로 단절시켜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심리를 표현하고 마주하는 자세는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평범'이라는 기준 자체도 사실 애매모호하다.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걸린다고 해서 '평범'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상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그들은 아픈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새로운 가치들이 존재하며 자신이 그것들에 의해 평가받고 싶다는 깨달음이었다.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대부분은 에드워드가 비겁하게 도망을 쳤다는 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플로렌스가 좀더 마음을 열고 본인의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에드워드에게 이해를 바랐다면 어땠을까. 에드워드의 당시의 수치심이 조금은 사그러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에드워드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한명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플로렌스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마주하기에 소극적이었고, 에드워드는 한걸음 물러서서 이해를 하기엔 다소 너그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게 사랑을 했다가 결혼이라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그들의 마음가짐은 조급했다.


사람들은 모두 트라우마가 있다. 그 각자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범위도, 정도도 각자 다르다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전보다 더 다양하고 새로운 가치들이 나타나는 요즘,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지만. 그 선택의 기준을 나부터 너무 편견을 가지고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좋은 책이었다.


영화는 책과는 또 다른 결말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접했던 영화 결론보다는 책에서의 결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너무 한쪽만의 잘못으로만 몰아가지도 않는. 그저 삶을 마주한 자세가 달랐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라라랜드처럼 말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49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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