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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Aug 30. 2020

#45. 떠난 자가 남긴 집을 청소한다는 것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추천사를 통해, 한번 읽어보고 싶어 킵해두었던 책이었다.

예상했던 내용과는 다르게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느낌이었지만, 그 기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간 책이었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대단해보였다.


그는 누군가 죽으면 비로소 본인의 일이 시작된다고 언급한다.

짧은 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에서는 사뭇 씁쓸함이 느껴졌다.



시도, 철도 모르고 찾아오는 인간의 상상이란 잔인하다.
모든 살림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삶을 끝내려는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작가는 죽은 사람들이 남긴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 사람들의 인생을 상상하곤 한다. 집 구조와 배치, 남긴 물건들에서 느껴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내가 남기고 가는 내 집의 모습이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사실 혈흔부터 여러 흔적을 치우는 것도 힘들겠지만, 남은 물건들을 통해 죽은 사람들의 모습과 심정을 상상한다는 것이 가장 작가에게 괴로운 일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들었다. 상상이란 작가말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잔인한 것이니까.



오늘 나는 고통이 깊게 드리운 이 공간에 혹시나 남겨져 있을지 모를 한줌의 온기라도 찾으러 온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직면한 이 세계가 차갑고 비정하기 짝이 없음을 증명할 흔들림 없는 근거를 발견하러 온 것인가?

책의 한 에피소드로, 한날 한때에 목숨을 끊은 노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에 남겨진 여러 물품들에서 그들은 행복한 노부부였고 그래서 함께 떠났다는 것으로 안타까운 사랑으로 결말을 암시했지만, 청소를 거듭할수록 작가는 침대 깊은 곳에서 발견한 칼과 여러 물품들을 발견하면서, 부부가 서로를 마냥 좋은 상태로 떠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진실을 깨닫는 것이 작가에게 가장 큰 고통이지 않을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물품에서 그래도 작은 따스함과 온기나마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작은 바램들이 결국 허를 찌르는 씁쓸함으로 변하는 잔인한 순간들이 말이다.



그 집은 우리와 단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심장 뜨거운 인간이 터전으로 삼던 곳이다.
이 터전에서 한세월을 견디며 누렸을 작고 소박한 기쁨과 행복 같은, 그 집에 머물던 사람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면 오해는 시나브로 사라진다.

그나마 책을 읽으며 다행이구나 싶었던 점 중에 하나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폐가나 누군가 죽은 집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폐가도, 누군가 죽은 집도 결국 누군가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았던 공간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작가가 편견없이 청소를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할 것이고, 버틸 수 있는 작은 힘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나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사치의 이면에는 어릴 때부터 뼈에 사무친 경제적 결핍감이,
사랑의 소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려는 마음 밑동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뿌리를 내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는지도 모른다.

내가 떠난 후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음악 플레이 리스트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듯이, 아마도 내가 떠난 공간도 그럴 것이다. 내 취향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곳이니. 그리고 공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소품들, 심지어 입는 옷이나 먹는 것에서도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풍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모습이 지긋이 담겨져 있는 형태였으면 한다. 그러나 모른다. 내가 떠난 후의 모습들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내가 몰랐던 나의 결핍감들이, 두려움들이 묻어나 있을지도.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작가가 의뢰받은 집들은 사고사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정확한 사유를 알수는 없으나, 남겨진 물품들을 보며 그들의 사연을 가늠해보며 작가는 말한다. 왜 그 사람들 모두, 본인에게만은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혹여나 달리고 있는 우리의 등에서 부르는 것들이 혹여나 내게 해가 되어 꽂힐까 싶은 두려움에, 시야를 좁히고 앞만 보고 달리지 않고 있냐고.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 말과 반대로 나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 엄격한 편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해서 혼자 걱정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쌓는 편이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병이 되어 몸이 아프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으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주말에 읽었던 이 책이,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는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리고 너무 날을 세우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주위를 좀더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걷는사람, 하정우]에서 하정우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앞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않고 곳곳에 놓인 맛있고 즐거운 것들을 잘 느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게 되었다. 떠난 자들이 남긴 공간에서 시작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다양한 관점이 묻어난 책, 그래서 느낀 점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책.

무엇보다 직업 때문에 모든 사고를 죽음 중심으로 하게 되었다는 작가분에게 이러한 환경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고 좀더 자유로워지시길 작게나마 바래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 나온다는 건, 좋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7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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