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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Feb 28. 2018

#9. 5년만에 떠난 보라카이에서의 신혼여행기

장강명의 '5년만에 신혼여행'을 읽고

사적인 서점에서 처방을 받은 책이었다. 기존의 장강명 책 '표백'이나 '한국이 싫어서'는 시니컬한 느낌이 가득했던 지라 처음에 그의 에세이라고 했을 때 낯설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장강명 다운 에세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5년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이 결혼한지 5면만에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담긴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처방받은 이유는 여기저기 넘치는 남의 조언들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답게 살고 싶다는 나의 고민 해결에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장강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라고 하셨다. 그러나 책에서의 장강명은 뭐랄까, 오히려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만에 갇혀 오히려 둘러보지 못하는 그러한 모습이 보여,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곳곳마다 콕콕 마음을 찌르는 구절들이 있었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은, 너무나도 공감이 되어 밑줄을 긋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장강명은 허세와 불필요한 지출을 하는 한국을 비판했다. 이유를 들어보면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삶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찾아가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에게 있어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마 정체성에 관한 한, 한국인들이 정신적으로 허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장강명은 냉정했다. 자기 위안에 대해 비판하고 정신세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냉정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터는 인생이 계획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확고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닌가, 라는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조금 속이 덜 시끄러울 수도 있고 편안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우연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연은 의지가 섞여 들어가야 운명이 된다.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부분이었다. 나도, 앞으로 발생하고 주변에서 자잘하게 일어나는 우연들을 잘 골라 운명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수많은 우연들 중에 운명으로 만들 우연을 선별하는 것도 점차 늘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장강명 답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에세이.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장 4월에 가게 될 보라카이에 대한 환상을 너무 담담하게 무너뜨린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녀와서 읽을 걸, 이라는 후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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