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님 Apr 02. 2018

#12.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법한 충동에 대한 이야기

무라타 사야카의 '살인출산'을 읽고

충격적인 소재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연애, 출산, 결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이야기들이 담겨진 책. 얼마 전 '편의점 인간'을 굉장히 재밌게 봤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는데, 이전 책에서 언급하는 비판을 넘어선 충격이 가득했던 책이어서 그런지, 다 읽고 나니 찝찝한 기분이 가득했던 책이었다.


소설은 짧은 호흡을 가진 4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살인 충동을 기반으로 한 살인출산, 2명이 헌신적으로 하는 연애가 아닌 3명이 하는 연애가 기본이 되어버리는 트리플,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조건을 기반으로 형식을 맺는 청결한 결혼, 자살을 합법화하여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여명. 네 가지 소설 모두 주제가 자극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아팠다.


누구나 다 갖고 있지만 쉽게 표현하지 않는 살인욕구를 기반으로 한 첫 단편 '살인출산'. 출산율이 낮아지는 미래에 출산을 10번 하면 국가에서 지정한 '출산자'가 되어 살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합법화된 제도를 상상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육체적 관계가 당연해지지 않고, 매미와 잠자리를 과자처럼 먹는 시대를 가정한 이야기들. 섬뜩했지만, 그러한 제도를 당연시 여기는 것 또한 언젠가는 뒤집어질 수 있다는 가정이 놀라웠다.


과거 세계를 굳게 믿느냐,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굳게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세계를 의심하지 않고, 사고가 정지돼 있다는 의미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어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무라타 사야카 책을 읽다보면, 이상한 논리가 맞는 것 같고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논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왜 나는 그 논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무서웠다.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던 논리와 편견, 생각들로 가득 찬 내 세상이 뒤죽박죽되는 것 같아서.


미사키는 흔들림 없이 이 세상을 믿고 있었다.
이 '올바른' 세상 속에서 호흡하고, 살아가고, 미래로 생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소설들의 흐름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반대되는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한 오묘함이 책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책 중반부에 보면 '지카는 죽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웃으며 벌레를 먹고 있다.'라고 언급한 부분이나 '전에 보였던 그 심한 거부반응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매미의 파편이 그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라고 말한 부분은 역설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로봇과 AI가 지배하는 세상을 생각해보았다. 기술의 발전이 틀림없이 더 나은 좋은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팀장님이 종종 이야기하시지만, 난 사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세상의 중심인 인간이 왠지 없어지는 기분. 그러한 기분이 이전 작인 '편의점 인간'에서도 느껴졌었는데, 이번 '살인출산'에서도 느껴져 더욱 섬뜻했던 것 같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늘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의 자세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 비판적으로 고착되어 버리는 사고다.
이 책이 버겁고 불편하게 느껴질수록 우리가 이미 많이
굳어져 버렸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마지막 옮긴 이의 문장인데, 이 문장들이 결국 이 책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이 전반적으로 불편했던 이유는 어쩌면 말 그대로 나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진실이고 진리라 믿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다른 점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어 책을 지속적으로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편의점 인간'에 비하면 사실 이 책은, 너무 심하고 자극적이었던 탓일까.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작가가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무서워지기 까지 했던 책이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78346


매거진의 이전글 #11. 뮤지컬 슬립노모어와 함께 읽는 맥베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