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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Jun 11. 2018

#19.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영화 '버닝'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오랜만에 영화와 함께 본 책에 대한 감상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그 대상은 바로 이창동 감독의 '버닝' 그리고 그 모티브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다.

사실 영화 '버닝'의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그레아블 모임을 지켜보다가 우연히 영화 '버닝'을 보고 방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모임 공지를 보게 되었고, 마침 보려고 킵해 둔 영화 '버닝'을 찾다보니 원작을 알게 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더 관심이 가게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결론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원작인 책 추천에 더 무게를 싣고 싶다.

영화와 책은 모티브는 비슷하나, 흘러가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면 영화 버닝은 좀더 뒷 이야기를 첨가했고, 서로 중점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하루키는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결핍, 상실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영화 버닝은 '사랑'이라는 소재에 더 초점을 맞춘 듯 했다.


자네는 헛간을 태우고, 나는 헛간을 태우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고, 나는 어느 쪽이 이상하다고 하기보다는
먼저 그 차이를 확실히 해두고 싶어.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본 나는 글쎄, 영화와 책 모두를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상실감을 느끼고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했고,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는 헛간을 태우는 남자의 행위를 가볍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 주인공을 본인과 다르다는 기준 하에 하찮게 여기고 처단하려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책을 덮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그 의미가 불확실하고 모호해졌고, 토론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이러한 모호함이 결국 이창동 감독이 남기려 한 의도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결말에 대한 각자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그 어떤 결말이 났어도 나는 영화에 대해 5점 만점에 5점을 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사랑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결말이 그렇게 났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의견들을 듣고 나니 벤에 대한 부러움, 시기, 질투심 등이 엮여 살인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영화 결말보다는 열린 결말로 남은 하루키의 소설 완결이 더욱 와 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하루키의 소설만 읽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을까. 헛간의 의미, 헛간을 태우는 행위에 대한 의미, 방황에 대한 고민 등.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 것만으로도 이 소설과 영화는 꽤 볼 만 했고 추천할 만한 책과 영화로 남았다. (그래서 인지 반딧불이에 수록된 그 많은 단편들 중, 헛간을 태우다 만 기억에 유독 남나 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09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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