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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May 29. 2018

#18. 섬세한 심리 묘사가 매력적인 추리 소설

진 필립스의 '밤의 동물원'을 읽고

밤의 동물원은 폐장 시간 이후,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약 3시간 30분 가량의 긴박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 책은 다른 일반 소설에서 긴박하게 사건의 이전, 이후를 담아낸 흐름과 달리 3시간 30분 간의 이야기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다만, 그 3시간 30분을 굉장히 긴박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신박하게 느껴졌다. 3시간 30여분간 주인공 조앤이 아들 링컨과 함께 탈출하는 과정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득 그녀가 떠올리는 과거 시점들에 대한 심리 묘사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이렇게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내 굉장히 흥미로웠다. 덕분에 출근길에 이 책을 며칠 간 읽었었는데, 다음 이야기가 꽤나 궁금해져서 몸을 근질근질하게 만들었다.


어떨 때는 사람들이 달라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


책을 읽는 내내 좋았던 문구들은, 조앤이 아들 링컨에게 한 말들 이었다. 귀찮을 수도 있는 아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꾸준하게 대답을 해나가는 조앤의 모습에서 아들 링컨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무심한 듯 툭 내뱉은 저 말에서도, 아직 어리기만 한 링컨에게 어려운 듯 하지만 자신의 속 마음이 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앤은 인간적이었다. 중간에 마주친 애기 엄마를 마주쳤을 때 느끼던 망설임도, 낯선 여자아이와 선생님을 마주쳤을 때 느끼던 감정들도. 모두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모두 다 함께 잘 버텨서 살아보아요!'라는 영웅심리가 아니라, 사람 마음 속 깊게 숨겨져 있는 어찌보면 이기심, 무서운 공포 속에서 자신과 아이 링컨이 우선적으로 살고자 하는 그 실제 마음이 잘 드러나 더욱 소설같지 않은 실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족은 그녀가 지닌 위대한 재능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가진 것에 감사한다.
.
.
자신의 인생이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이어지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모든 걸 더 사랑하는 건지도 모른다.


조앤은 현실적이고 현재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이성적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소설의 결말은 조앤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대처안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재미있게 흘러가던 중에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함께 도망을 쳤던 선생님 파월과 범인 로빈이 마주치면서였다. 선생님 파월을 보고, 왠지 모르게 범인 중 한명인 로빈은 나머지 사람들이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긴박함이 느슨해지는 순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범인들의 범행 동기 또한 명확치 않은 점도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에 읽었던 추리 소설 중 이렇게 상황 표현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담아낸 소설이 있었을까. 3시간 30여분간 나도 조앤과 함께 도망치는 듯한 기분, 숨죽이고 숨어있었던 기분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야기 흐름보다는 인간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좋을 추리 소설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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