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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Sep 16. 2018

#47. 교토, 둘째 날.


날이 밝았다. 동행인 동생이 오후에 도착하기로 한 날이라, 아침 일찍 바지런하게 호텔을 나섰다. 어떤 사람이 호텔 안테룸의 조식 추천을 했길래 일찍 일어나 먹고 나왔는데, 이전에 갔던 다른 일본 호텔보다 오히려 양도 적고 크게 글쎄?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날이 한껏 좋아서 나와서 한참을 셔터를 눌러댔다. 호텔 안테룸이 있던 동네는 아기자기하니 참 예뻤다. 교토 특유의 느낌이 참 잘 배어나는 곳. 그래서 내가 도쿄보다도 교토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너무 더워서 땀이 무수히 나기 시작했고. 전날 버스 1일권을 사둔 덕에 이날은 무사히 구글 지도를 벗 삼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동행이 오기 전, 전 회사 동료분이 추천해주신 은각사를 들릴 예정이었다.


교토는 4번째 방문이었고, 그전에 유적지나 사찰은 많이 갔었기 때문에 이번 일정에는 하나도 넣지 않았다. 그러다가 동행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빈 오전 일정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한 곳은 은각사.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을 간 것 같은데 날도 좋았고, 그때 들었던 음악도 너무 좋았고, 뒤로 갈수록 한가해지는 버스의 아늑함도 너무 좋았다.



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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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5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게다가 가는 거리 양 쪽으로 길게 상점이 늘어서 있어 심심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대부분 카페나 간식을 파는 곳이라 생각보다 볼거리가 있진 않아서 나는 그대로 성큼성큼 올라섰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은각사 입구. 입구를 본 순간, 나는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래서 추천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예뻤던 입구. 그리고 입구를 들어서면 미로처럼 양 옆으로 높은 나무가 늘어서 있다. 엄청 더웠지만, 그 순간 코를 엄청나게 자극하는 풀내음 때문에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지고 있었다.


옛 황실의 정원이었다고 했나, 여하튼 그래서 그런지 호수도, 나무들도 너무 예뻤다. 호수에 비친 파란 하늘마저도. 지금도 분주하게 정원을 가꾸는 일본 사람들을 보니, 일본 사람들은 오래된 옛 것들을 길가의 건물부터 이러한 유적까지 참 잘 보존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이 파란 하늘을 아무생각없이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바람소리랑,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 그리고 너무 덥지만 그 바람이 조금은 선선하게 느껴질 때. 여행을 참 많이 다니는 나지만, 매번 '언제가 제일 좋아?'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꼽는 순간들이 하나같이 다 별일 아닐 때였다. 이렇게, 모두 바쁘게 돌아가는 시점에 나 혼자 아무 생각없이 시원한 공간에 있을 때, 바빠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나는 멍하니 앉아있을 때, 평범한 일들을 시간 쫓김없이 맥주마시면서 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 툭하니 날 내던져 놓는 것이 나는 가끔은 필요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원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너무 예쁜 정경이 펼쳐진다. 이 맛에 이 곳을 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이 근처에 뷰가 좋은 카페가 있다는 글을 보고 거길 가야겠다! 했는데 마침 월요일은 휴무였다. (흑) 아쉬운 마음에 은각사를 대체했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내와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 교토를 처음 방문하시는 분은 이 곳만을 오기엔 다소 시간이 아까울 수 있기 때문에, 근처의 기요 미즈데라 등과 함께 엮어서 오면 좋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철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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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를 내려와서 왼편으로 꺾으면 바로 철학의 길이 이어진다. 예전부터 교토에 가면 꼭 가봐야지, 했는데 매번 못 와봤던 곳. 그리고 교토에서 손에 꼽을 만큼 좋았던 곳 중 하나였다. 볼거리가 많진 않지만, 예쁜 상점들이 늘어져 있어 군데군데 들어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옆에 흐르는 천을 끼고 그 길을 걷는 시간도 고즈넉하니 참 좋다.

사실 이 곳에서 카페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마땅한 카페가 없었다. 철학의 길에서 유명한 '요지야' 카페는 풍경이 좋다는 좋은 평이 많았으나, 평들을 쭉 둘러보니 근처에 마땅한 카페가 없어서 더욱 유명한 듯 싶었다. 게다가 녹차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굳이 들릴 필요가 없는 곳인 것 같아 여유있게 철학의 길을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Kyoto Blue Bo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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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블루보틀을 처음 마시고 나서 '아 정말 내 스타일이다!'라고 생각했던 게 벌써 작년 가을. 교토에도 있다길래, 꼭 가봐야지- 하고서 들린 곳이었다. 철학의 길에서 버스를 타면 15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 난젠지 앞에 있어서 왠만해서 시간내서 오기 힘들텐데, 라는 곳에 있었는데 의외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꽤나 들리는 곳이었다. 결국 난 다다음날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또 왔던 곳이지만! 뉴욕에서 마셨던 기억이 스물스물 떠오를만큼, 교토에서 마신 커피 중에 가장 좋았던 곳. 특히 아침 일찍 들리니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 곳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00년 된 옛날 목조 주택을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

넘나 예뻤던 공간. 하늘이 너무 파래서 가게 창에 비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블루보틀은 심플하고도 특징이 잘 드러나는 패키지가 너무 예쁜데, 텀블러랑 머그컵 중에 고민하다가 결국 머그컵을 선택. 현재 새로 다니고 있는 회사에 두고 잘 쓰고 있다. 사이즈도 적당하니 너무 예쁘고 넘나 마음에 드는 것! 사오길 잘했다 :) 개인적으로 교토에 맛집이라고 거론되는 카페를 갔을 때, 역시나 블루보틀이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나머지 맛집들의 커피는 내게 넘나 쓴 것을T_T 블루보틀이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아마도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 다른 날 아침에 가서 빵도 먹었을 땐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는!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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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조지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샵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사실 동행인 동생이 오기 전에 시간이 생각보다 떠버려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들린 곳. 이치조지에서 들린 케이분샤는 서점과 소품샵이 함께 붙었는데 너무나 내 취향인 소품들과 책이 많았다. 살까말까 백만번 고민하다가 내려둔 물건이 태반이었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좋아졌던 곳. 이치조지 동네 자체도 아기자기하니 너무 예뻐서 더위도 잊고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금새 떠나야 했던 동네이지만,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근처에 아카츠키 카페나 다른 샵들도 더 둘러보고 싶었던 동네 :)




기온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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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동생을 만나고 나니 오후 세시.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기다렸기 때문에, 나는 반 상태는 흥분 상태였다. 나름 맛집이라는 교토 역의 오꼬노미야끼 집을 찾아갔으나, 그저 그런 맛이라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도착했다는 기쁨에 마냥 행복해하는 동생과 함께, 기온 거리의 야경을 눈에 담기 위해 기온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결론적으로 야경일 때보다 해가 막 지기 시작한 시점에 와서 더욱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 막 지는 하늘과 예쁜 불빛, 그리고 일본의 전통 가옥의 느낌이 한껏 어우러져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 동생과 한참을 서성이며 다닌 기온 거리.

너무 예뻤던 기온 거리. 무엇보다 이제 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기쁨! (너무 찍어줘서 부담...일지언정) 오꼬노미야끼로 부른 배를 소화시킬겸, 예쁜 거리 구경할 겸 한참 걸어다녔던 기온 거리. 기온도 이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 중 한 곳이었는데, 교토 방문 네번 만에 드디어 오게 된 곳. 오게 된다면 너무너무 비싸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pass the baton 상점도 둘러볼 것을 추천 :)




폰토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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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 강의 야경을 실컷 구경한 후에 들린 폰토쵸 거리. 굉장히 좁은 골목이었지만, 양 옆으로 여러 식당들이 즐비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 같았다. (실제로 교토 여행 중 볼 수 있는 외국인을 이 곳에서 다 만난 기분) 거리 자체도 야경과 참 잘 어울렸지만, 가게마다 홍보하기 위해 좁은 길가에 배치해놓은 아기자기한 센스있는 소품들이 볼거리를 한결 더해주었다.

이 거리는 사실 재즈 바 Dolly를 들리기 위해 온 곳이었다. 그런데 재즈 공연이......주말인가 특정 요일에만 진행된다고 했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우리는 강가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실까, 한참 고민했다. 거리 자체의 분위기는 좋았는데 문제는 강가를 바라보는 상점들은 음식 값 외에 자리 값을 따로 받는다고 했다. (더 충격)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고민을 한참 하다가 결국 맥주 한잔 씩만 하고 귀가하기로 결정. 폰토쵸 거리를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보이는 맥주집에 들렸다.

분위기는 굉장히 아담했고 나쁘지 않았다. 외국인들만 잔뜩 있던 맥주 바. 그렇지만 일본의 가게들은 내부 흡연을 허용하는 곳이 많아 이 곳은 조금 앉아있다 보니 코가 너무 맵고 아팠다. 결국 오래 즐기지 못하고 한잔 씩 마시고 나왔던 곳. 그래도 조금 선선해진 밤 공기도, 바람도, 무엇보다 이곳에서 유쾌하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던 외국인들의 반응도. 교토에서의 두번 째 날을 즐겁게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주었던 것 같다. 둘러보니 참 많은 곳을 다녔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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