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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Sep 22. 2018

#27. 기존의 공연 경험을 완전히 뒤집은 슬립노모어

전윤경의 '슬립노모어'를 읽고

이번 북저널리즘에서 읽은 책이 'Sleep no more'라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지난 뉴욕 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았다고 꼽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Sleep no more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연을 꽤 좋아하는 나는 뉴욕에서 볼 뮤지컬 공연을 여러 개 킵 해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이 공연을 강력 추천 하였고, 꽤 금액이 비싸기도 했거니와 위치가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것도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공연을 보지 않고 뉴욕에서 돌아왔다면 정말 후회했을 만큼, 이 공연은 내게 베스트로 남아있고 그랬기에 이번 책이 더욱 반가웠다.

© Sleep No More, mckittrick hotel

슬립노모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소재로 한 공연으로, 약 2시간 반 가량 관객들이 10여 명의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보는 퍼포먼스형 공연이다. 이러한 공연을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 몰라 매번 퍼포먼스 또는 체험형 공연이라 불렀었는데, 이머시브 공연(immersive)이라 한다는 것을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제는 맥베스 지만, 사실 내용 전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이 공연에서 배우와 관객을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가면이다. 관객들은 가면을 쓰고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관람하게 되고, 각자 원하는 배우를 따라다닐 수 있다. 공연장은 약 5층 남짓의 호텔을 개조한 공간인데, 배우들을 따라다니다보면 중간에 겹쳐지는 다른 배우를 따라가게 되기도 하고, 다른 층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따라가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5층에서 4층으로 배우를 따라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다른 배우를 향해 급 방향을 선회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배우를 따라갈까, 남아 있을까 에 대한 결정은 관객들의 각자 몫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모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이 공연장을 나오게 된다. Sleep no more에서 관객들은 배우들과 사진처럼 가깝게 붙어 연기를 볼 수 있고 배우를 도와 공연을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기존 공연과 완전히 다르다.

사실 관객이 가면을 쓴다는 것이 단순하게 배우와 차별을 두기 위함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일반적으로 공연에서 분장을 하는 배우의 권한을, Sleep no more에서는 관객이 가면을 쓰게 함으로써 경험을 바꾸게 한다는 점이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을 기획한 펀치드렁크는 기존에 공연이 갖고 있던 이러한 발상들을 신선하게 뒤집었다. 덕분에 이 가면을 통해 관객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Sleep no more를 처음 보기 위해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짐을 맡기면서 다른 사람과 뒤쳐져서 혼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미로에서 음습하게 느껴졌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으스스하게 들리는 음악과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또한 어색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한참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칵테일과 와인을 마시며 연회를 즐길 수 있는 바가 나온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면, 그간 느꼈던 두려움이 안도감으로 바뀌게 되면서 공연에 비로소 즐겁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책에서 이러한 부분을 언급한다. 5층 남짓 되는 이 건물에 낯선 곳에 관객이 던져졌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떠도는 관객들의 본능을 이용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이 공연은 특별하다.


그리고 이 공연은 4가지 감각을 활용해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모든 배우들은 대사가 없는 몸짓과 표정으로만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그들은 어떤 무대를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배우와 관계가 어떤 관계를 맺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공간을 떠돌며 공연을 보다보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소품이 궁금해지는데 실제로 관객들은 이러한 소품들을 원할 때마다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볼 수 있다. 두시간 반 가량의 공연을 한참 따라다니며 보던 나는, 중간에 지쳐서 소품이었던 쇼파에 앉아 소품들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시약병을 만지며 무언가 약을 만들던 배우가 다음 연기를 위해 방을 떠나면, 그 방에 남아 약병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당시 공연을 보면서 느끼진 못했는데,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객들은 다른 관객의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다른 관객이 소품을 만지면 나도 따라 만져보고, 반대로 내가 하는 행동을 다른 관객이 따라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Sleep no more는 이렇게 다른 관객의 행동도 관람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책에서 언급해서 더욱 놀라웠다.

© Sleep No More, mckittrick hotel

이 공연이 특이하다고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연의 배경이 되는 맥키트릭 호텔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이 호텔은 개장 6일을 앞두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손님을 받지 못한 호텔이라고 한다. 이머시브 공연은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장소나 사용하지 않는 유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의미있게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공연의 소재는 역사성을 고려한 소재를 활용하고 이에 관객의 상상력과 경험이 더해짐으로써 극대화시킨다는 점이 이러한 공연의 의미를 더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이 공연을 보고 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갈증이 있었다. 국내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이나 소재였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갈증을 해소시킬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책을 통해 그러한 부분들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다. 특히 이번 책은 온라인 e-book형태로 읽게 되었는데, 중간 중간에 삽입된 영상들은 느낌을 한껏 더 해주어 읽기에 더욱 좋았다. 추가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공연들이 런던이나 상하이에서 열린다는 사실, 그리고 이머시브 공연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책을 읽는 내내 유익함은 더해졌다.


Sleep no more가 성공적인 공연이라고 언급되는 이유는 어떠한 경험을 통해 공연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버려진 공간을 시민들의 체험 등을 활용하여 살리려하는 노력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러한 체험이 어떻게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까 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라 다소 아쉽다. 마지막에 곽민해 에디터가 언급한 것처럼 단순하게 '우리는 이러한 의미를 지닙니다.'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어떤 참여를 어떻게 함으로써 어떠한 의미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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