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님 Mar 03. 2019

#33.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유현준의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읽고.


유현준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출간 전에 이미 주문을 해두었다.

그렇게 도착한 유현준의 에세이. 뒤숭숭한 마음에 왠지 지금 딱 읽으면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삼일절 전날 새벽까지 결국 완독을 하고나서 잠이 들었다. 당장 읽은만큼 마음에 많이 남았던 책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유현준 작가가 어린시절 지나온 장소들, 삶에 영향을 주었던 장소들, 특별한 장소들, 연인을 위한, 혼자를 위한 장소들, 일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들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사진들도 삽입되어 있어 지루함이 없고 글의 길이가 짧아 책 두께가 두꺼운 것에 비해 읽기 꽤나 수월하다. 다만 앞 챕터들은 글이 너무 짧고 마무리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챕터가 끊기는 느낌이 있어, '끝이야? 벌써 다음 챕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 아쉬움이 남았었다. 뒷부분으로 갈 수록 흥미진진해져 놓을 순 없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공간들을 접어두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부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은근하게 나에게 영향을 줬던 공간들까지, 연이은 꼬리처럼 머릿속에 많은 공간들과 추억이 떠오르게 되었고, 나도 언젠가는 한번 나에 대한 공간들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는 조용히 혼자 있을 공간이 없었다. 학교는 단체 생활을 강요당하는 공간이었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p53


이 부분을 읽다보니 이전 회사에서도, 현재 회사의 사옥에서 아쉬운 점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가끔은 머리를 식힐겸 마음을 위로할겸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그렇게 여유를 즐길만한 공간이 없었다. 특히 전 회사랑 현 회사 모두 본 사옥이 아닌 외부 사옥으로 나와있다 보니 선택권이 꽤나 부족했고, 사옥에서 가끔은 혼자 앉아 하늘도 보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려 아쉬움이 있었다. 유현준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회사에 있는 시간동안 개인 생활보다 단체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함이 더욱 느껴졌다.

유현준 작가는 학창 시절에 비해 대학교 캠퍼스는 선택권이 넓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 대학교에서 멍때리며 앉아있던 벤치, 벚꽃을 바라보며 음악을 혼자 들었던 공간, 앉아서 점심을 빠르게 때웠던 공간들이 떠오르면서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단체생활을 강요당하는 공간. 과연 마냥 좋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공간이란 단체 생활과 개인 생활을 모두 존중해줄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가 생긴 것이 더 좋았기 때문에 다양한 추억들이 아쉽지 않았다. 

그 몇년 동안의 마당에서의 기억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선물을 주었던 것인지 몰랐던 거다.

p71


자동차가 생기면서 주거 공간이 바뀌고, 그에 따른 추억들이 함께 바뀌는 과정을 읽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여태껏 아파트 아니면 빌라에서만 살았던 나였기에 경험해 보지 못해서 더욱 그랬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연못과 화단이 사라져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서 그 추억이 더욱 소중해졌고 좋은 선물이었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던 공간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생기는 아쉬움들은 말 그대로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많은 공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p87


음악은 기억을 연관시켜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유현준 작가는 공간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도 그 곳에서 겪었던 감정 때문에 좋은 공간으로 남았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누구와의 첫 추억으로 인해 그곳이 설레임으로 남았고, 누구와의 행복했던 추억으로 인해 그곳이 아련하게 남았고, 행복하고 아픈 공간으로 기억이 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추억이 방해받기 싫어지면, 다음에 같은 공간을 다른 사람과 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때가 생기곤 한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까지 다른 사람과의 추억으로 덮이는 것이 조금은 무서웠나보다. 그리고 공간에 대해 비슷하게 느끼는 유현준 작가의 글을 읽고 나니, 그의 이러한 생각이 그가 만든 건축물과 공간 디자인에 잘 녹아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건축을 꼭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p119


자취를 결정하게 되었던 많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북적거리는 집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피곤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과 달리, 집청소를 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했기에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월세가 듬에도 불구하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되었고 그 집을 원하는 분위기로 마음껏 꾸미게 되면서 나는 삶의 질이 다소 높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나의 삶을 빚는 공간. 더불어 그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나는 나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겐 공간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 그런 리스트가 있을 때 여러분의 삶은 더욱 위로받고 더 빛나게 될 것이다. 힘든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위로받고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공간을 통해 찾아보자.

p410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가치는 달라진다. 가치가 다르면 좋아하는 공간도 다르다. 

p14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요 내용은 바로 이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좋은 공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라는 것. 그리고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통해 가치를 높여보라는 것. 유현준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겹치는 부분이 많아, 이 책은 내게 따스한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던 이전 그의 책들에 비해, 다소 감성적으로 접근했기에 더욱 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따스한 봄이 다가오니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도 점차 시간을 들여 늘려가봐야겠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19270


매거진의 이전글 #32. 마케터가 인사이트를 얻는 좋은 수단,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