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과 나는 살아가는 방식이 가족 중 제일 비슷하다. 사춘기가 되기 이전에도 딸은 종종 '뭔가를 하려고 하다가도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진단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아가 더 강해진 지금, 그녀는 자기 스케줄대로, 자기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또 결과도 스스로 잘 책임을 지는 편이라서 엄마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우 다른 부분은 여행 스타일인데, 딸은 일단 낯선 곳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익숙하고 예측가능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낯선 곳에서 활력을 얻는 나와는 매우 다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에게 먼저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 보고 싶다고 하니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여름부터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찾고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와 딸만의 겨울 여행을 준비해 왔다.
학기를 마치는 날 저녁, 우리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내 마음속 이번 여행의 목표는 딸과의 다정하고 소중한 관계를 공고히 하고 최대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맞춰주기였다. 요즘엔 서로가 너무 바빠서 정말 업무용 대화만 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24시간 둘이서만 보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대가 훨씬 더 컸다. 도쿄에 도착한 후 느낀 일상과의 가장 큰 차이, 평소 아이의 행동에 지적질하던 나 역시 아이와 꼭 같이 이 도시가 익숙하지 않고, 모르는 게 많고, 헤매야 했기 때문에 대화를 훨씬 많이 해야 했고 서로의 실수에 조금은 더 관대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글쎄, 이토야라는 엄청나게 큰 문구점에 갔는데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펜이며 종이를 담고 나서 계산대에 가니 일본 정부에서 디지털로 발급한 면세 QR코드는 안 받아 준다는 것이다. 이것만 믿고 여권은 숙소에 두고 왔는데... 순간 그냥 계산할까도 생각했지만 두 사람분의 문구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둘 다 책과 그림 도구에 욕심이 많은 편...). 그래서 다음 날 여권을 가져오면 다시 계산해 주기로 하고 물건을 계산대에 두고 나와야 했다. 그녀의 실망한 표정에 미안하긴 했지만, 튀김덮밥을 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 날 나는 조깅을 핑계로 긴자까지 혼자 뛰어가서 문구류를 면세 가격을 획득!
또 한 번은 디즈니씨에서 장장 11시간을 놀고 어두워져서 밖으로 나왔다. 아니, 분명히 입구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 물품보관함에 가방을 두고 들어갔는데 문을 잠가 버렸네. 디즈니랜드가 9시까진데 물품보관함을 9시 전에 잠근다고? 우린 너무 당황했고 나는 최악의 경우 호텔에서 속옷만 입고 자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참 두리번거린 후, 디즈니 직원이 보이길래 얼른 달려가 물품보관함 열쇠를 보여 줬더니 우리 물품보관함은 다른 쪽 입구에 있다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좀 더 걸어가 보니, 디즈니씨의 입구와 출구가 달랐던 것이었다. 우리의 물품보관소는 입구의 오른쪽이었으니 당연히 출구의 오른쪽에선 찾을 수 없을 수밖에...
이런 경험들을 아이와 함께 하면서 나는 다시 겸손함을 배웠다.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나의 세상은 분명히 익숙함과 경험치가 다른데 나는 항상 나의 기준으로 아이의 실수를 평가하고 있었으니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나는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고 실수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면서 아이가 일상에서 그럴 기회를 그동안 앗아버린 건 아닌 지 후회가 되었다.
엄마가 정말 미안했어, 우리 아가. 네가 스스로 세상 여행을 즐기는 것을 기다려 줄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 그녀가 다음에도 엄마랑 둘이서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