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작가의 글이라 그런가?

고향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다

by Mmmmm Park

옛날 문학소녀 시절, 우리가 교과서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집이 생각나는 책을 읽었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말장난 같기도 한 로맨틱한 시집 제목이 그저 멋있게만 보였지만 이번에 읽은 이수정 작가의 [단역배우 김순효 씨]는 담백한 제목에 기대를 뛰어넘는, 그리움을 후벼 파는 이야기였다.


내가 재외동포라서 그런가? 띠지의 작가의 프로필만 보고 괜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 혹은 기대감 상승! 사실 이 책은 고전을 읽는 북클럽 모임인 ‘고전살롱’의 리더이신 란주 님께서 블라인드 박스처럼 직접 골라 선물해 주신 책이다. 역시 책에 일가견이 있으신 리더님, 나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이 무언지 콕 집어 골라 주셨다


미국에서 돌아와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경주, 소실의 딸로 아버지의 본처를 엄마 삼아 자라온 그녀는 뭔가 단단하게 잡아주는 곳/것/사람이 없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심지어 아이를 원하는 남편 몰래 피임약까지 먹어 왔으니 그 마음이 어떠한 지 사실 상상이 잘 되질 않았다.

그런 그녀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여행길에 동행을 하게 되고 마침 펑크를 낸 인생 다큐의 다음 에피소드 주인공의 대타로 엄마를 세우게 된다. 방송 작가로 객관화할 수밖에 없게 된 엄마에게 평소 딸로서는 절대 안 했던, 아니 못했던 질문들을 방송을 위해 하게 된다. 이 부분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가끔 가족들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로 적당치 않기도 하다. 날 너무 사랑해서, 날 너무 걱정해서, 날 위해 너무 희생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내 속마음을 열어 보이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달까? 이수정 작가는 이런 부분을 너무 잘 알았는지 방송 작가 딸과 방송 출연자 엄마로 모녀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타당성을 부여한다.

고창에 경주를 데리고 간 엄마가 경주의 친엄마를 만나게 된 장소, 배경, 친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나하나 밝히며 경주는 비로써 자기의 근본, 뿌리, 그리고 돌아가셨지만 단단하게 마음을 둘 곳을 찾게 된다.


이미 인생의 반 정도를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가끔 발을 단단히 바닥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 아니라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몇 년씩 살고 있는 집도 언젠간 떠나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가구도 들이지 않고 이사할 때 손이 많이 가는 그릇은 딱 가족 수만큼만 가지고 있다. 수리가 필요한 부분도 적당히 견딜만하면 견디고 살며 인간 관계도 필요 이상 넓히지 않는 그런 삶을 나도 모르게 살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아, 내 마음 둘 곳이 여기가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구나. 결국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나 보다. 한국에 가서 엄마랑 있어도 엄마가 그립다. 내 옆의 엄마보다 그리움 속의 엄마, 아삐, 가족들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재외동포 작가라서 정말 그랬던 걸까? 내 마음의 어딘가를 툭 건드린 [단역배우 김순효 씨]는 아마도 두고두고 꺼내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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