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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May 05. 2020

몇 개 국어 하세요?

언어학 연구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언어학을 연구한다.

주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언어학은 대체 뭘 연구하는 학문인지 궁금해 하며, 심지어는 언어학자가 여러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주 듣는 질문이, '몇 개 국어 하세요?" 이다.


언어학 중에서 여러 언어를 알아야 하는 분야도 있지만, 사실은 모국어 하나만 알아도 언어학을 연구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다만 하나의 언어학 이론을 여러 언어에 적용해 보는 이른바 '범언어적 규칙'을 찾는 것이 언어학의 주요 연구 과제이기 때문에 하다보면 아무래도 여러 언어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보니, 다른 언어의 규칙, 즉 문법, 역사, 발음 법칙 정도만 이해하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불어라고 하면, 인사만 아는 수준인데, 라틴계 언어의 특징 중에서 불어가 따르지 않는 특성 (라틴계 언어 중 많은 언어가 주어를 생략할 수 있는 반면, 불어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거나, 어느 언어에 성이 몇 개 있고, 어순이 어떻고 하는 등의 '언어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럼 언어학자는 뭘 하는 사람인가?

언어학의 분야는 정말정말 넓다. 일단 언어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니 사람이 말한 것, 쓴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말하고 쓴 것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큰 한 축이다. 이걸 연구하다 보면 진짜 인간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진다. 언어학은 학문의 역사의 초반부터 철학과 함께 등장하는 아주 역사가 긴 학문인데도 아직도 밝히지 못한, 이해할 수 없는 패턴이 아주 많다. 특히 언어는 계속 시대와 함께 변하고 발달하기 때문에 또 할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패턴을 배우고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여러 언어의 다른 패턴을 순식간에 배우기도 한다) 또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면 그걸 다시 배워서 사용하는지, 정말 인간의 우주는 신비하기 짝이 없다.

다른 한 축에서는 Applied linguistics, 즉 응용 언어학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기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외국어를 배우는지, 여러 언어를 배운 사람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얼마나 큰지 등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융합학문이 인기인데다가 인간의 생활 패턴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언어학과 다른 학문의 결합이 많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오랫 동안 언어학이 마치 비인기학과인듯 보였지만 요즘 Computational linguistics 전공자를 찾는 구인 광고가 해외에서는 넘쳐난다. 전문직으로, 주로 Google, Amazon, Uber 등 온라인으로 대량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들에게는 고객들의 코멘트, 피드백을 사람이 다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솔직히 요즘 같아선 전공을 바꿀 걸 하는 생각도 든다. Computational linguistics가 진짜 잘 나가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전망도 너무 좋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역시, 인간이 중심에 있는 연구만큼은 수명이 다하는 경우가 없구나! 라는 즐거운 깨달음도 느낀다. 언어학이 엄청 고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같은 사람의 경우,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실험이나 자료 채집이 너무 쉽고, 하루 일상에서 온통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기회 투성이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을 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내가 만든 말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는 일을 하니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또 언어는 계속 변하고 발전하고 사람에 따라, 그룹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루할 새가 없다. 연구거리 투성이이다. 내가 무슨 미생물을 연구하거나 엔지니어거나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일상 생활에서 나의 연구 과제에 쉽게 다가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막상 뭘 공부하건, 학자들을 만나면 다들 자기의 분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연구 과제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제이고,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깝다고들 말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요즘 말로 콜라보를 하다 보니 나도 어깨 너머로 언어학과 다른 학문의 융합 분야도 공부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정말 재미있지만, 마치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같아 보이지만, 역시 언어학이 젤 재미나다. 내가 나를 관찰해도 재미있고, 가족의 말을 관찰해도 재미있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재미있다. 이렇게 가성비 높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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