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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n 05. 2020

가성비 갑, 외국어 배우기 방법? (1)

외국어 학습과 휴리스틱

얼마 전 '가성비 갑'이라는 신조어를 들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물건을 구입할 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황을 가리키는 정도의 말인 듯 하다. 사실 우리는 소비와 투자를 할 때 최소 투자로 최고 효과를 누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고, 현명한 선택을 했을 때 이런 '가성비 갑'의 상황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최소 비용으로 최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시간 안에,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최소 투자, 최소의 노력으로 얻는 성과'라는 말이 참 불편하다. 



심리학에 휴리스틱이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정보를 기반으로 가용 휴리스틱 (availability heuristics)을 활용하여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내가 그동안 했던 경험에 비견하여 새로운 상황에서도 직관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과 관계가 많은데 예를 들어, 원시 시절부터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빠르게 판단해야 할 때에는 작동되는 것이 휴리스틱이다. 현대 상황에서 보자면, 쇼핑을 하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근처에 험상궂은 종업원과 웃고 있는 종업원이 있다면 누구에게 다가가서 도움을 청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이 더 친절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웃고 있는 종업원에서 다가가는 것이 도움을 쉽게 받을 확율이 높다고 판단, 그 사람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판단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에 와서는 빠르게 일어나는 의사 결정 과정을 연구하는데 특히 소비자 행동/심리, UX, AI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휴리스틱의 개념을 많이 도입하여 사람의 의사 결정 과정을 연구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학습에서도 휴리스틱이 유행하는 추세이다. 우리 아이들이 국제학교에서 사용하는 수학 연습지에는 Heuristics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엥, 초등 수학 문제에 왠 휴리스틱?'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전 단원에서 배운 패턴을 활용하기를 연습시키는 수학 문제였다. 즉, 이미 훈련으로 인해 익숙해진 어떤 수학적 생각의 흐름을 활용하여 특정 문제 패턴을 보면 자동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즉 수학적 사고가 익숙해지고 빨라지고 패턴 적용이 쉬워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휴리스틱이 학습을 할 때 꼭 도움이 되는 것일까?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인 Daniel Kahneman 교수는 사실 휴리스틱 때문에 놓치는 대안이나 아이디어가 많다고 한다. 결국 창의적인 의견은 휴리스틱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배제가 되어야 할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의 요인이다. 왜냐하면 휴리스틱을 활용하면 경험상 검증된 방법 내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데, 새롭고 창의적인 의견은 검토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즉, 그냥 익숙한 문제 해결 패턴을 바로 활용하면 인지적 부담 (cognitive load)를 줄여서 우리의 두뇌가 덜 피곤하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새로운 방법이나 패턴을 창조해 내야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에는 휴리스틱으로 인해 창의적인 생각이 억압을 받게 된다.



자, 그럼 요즘 세상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휴리스틱은 우리의 인지적 부담을 줄이고 작업 속도, 단순 의사 결정 속도를 촉진해 주기는 하지만 더 이상 이런 활동이 인간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이 받아야 할 교육은 빠르게 단순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훈련'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학교에서는 빠르게 연산하는 법, 가장 빠르게 문제 해결 지점에 도달하는 법을 학습의 목표로 삼는 것을 보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생각의 길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자꾸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이런 학습을 받은 결과인 것이다.  뇌는 기본적으로 좋게 말하면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나쁘게 말하면 엄청 게으르다. 덕분에 자기가 편한 방법을 알면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는데 저항이 심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나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착각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뇌의 장난인 것이다.

이렇게 창의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을 억압하는 학습을 하면서, 또 어느 시점에는 아이들을 '창의력 교육'이라는 명목하게 자꾸 생각해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접근이고, 사실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사실 외국어 학습과 휴리스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두 개로 나눠서 포스트하겠습니다. 가성비 갑, 외국어 배우기 방법? (2)에서는 제 주요 연구 분야인 'Third language learning' 또는 'Multilingualism'에서 논의하고 있는, 우리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알고 있을 때 우리의 뇌가 어떻게 (언어) 정보를 처리하고, 초인지적으로 발달하는 지, 효율적으로 배우려다가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Cover image source: https://paleofoundation.com/heuristics-decision-fr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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