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 and Jun 08. 2020

유럽에서 나도 멀티링구얼이 되기로 결심하다!

이탈리아 친구의 영-불 동시통역을 목도한 사연

2000년 여름, 나는 아일랜드에 3주째 머물고 있었다.

어차피 특별한 일정도 없었고, 호스텔에 머물 때마다 주워들은 좋다는 곳 중 다음 목적지를 하나 정해 말 그대로 유랑같은 배낭여행하고 있었다. 이미 밀리니엄, 2000년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당연한 여러 가지 여행의 도구들 중 3대 핵심 도구가 없는 여행이었다. 그 3無는 바로 '인터넷, 휴대폰, 신용카드'!! 


1. 인터넷 사용 불가: 인터넷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일단 유스호스텔이나 독립 호스텔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고, 유럽 여행 중 일단 컴퓨터를 거의 찾을 수 없음

2. 휴대폰 없음: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지만 엄청 비싸고 학생 배낭여행족이 그런 사치용품 보유할 여유 없음

3. 신용카드 없음: 대학생이니 당연히 신용카드 없었고, 우리 부모님은 나를 너무 믿으셔서 비상용으로라도 카드를 주시지 않았음


지금 생각하면 '그럼 호텔이랑 기차 시간을 어떻게 확인해?, 예약도 안 하고 간다고?' 라는 당연한 질문을 했을 것 같지만, 그 때 기차역에 가거나, 신문/잡지/전화로 기차,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호텔 예약은 지금은 생소한 '토마스 쿡' 같은 여행사를 통해 하던 때였다. 난 어차피 주머니 사정상 호텔이 아닌 유스호스텔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independent hostel list'같은 잡지나 카탈로그를 하나 구한 다음, 해당 도시로 출발 전 공중전화로 미리 방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식이었다. 또는 어떤 도시에 간 다음,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의 호텔 예약 센터에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날은 더블린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풀고, 내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었다. 

Dublin International Youth Hostel (출처: Tripadvisor)
Dublin International Youth Hostel 방 (출처: Tripadvisor)

유스호스텔에만 느낄 수 있는 나름의 낭만은 바로 그 날 새로 만난 친구들과 근처 Pub 으로 맥주를 마시러 가서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그 날도 늦은 오후, 일기를 한참 쓰고 있는데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나에게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여행하면서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만큼은 동양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니면 가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그 여자아이들도 그래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 갑자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어였음) 신나게 떠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어로) 이 애들은 이탈리아에서 온 세 명의 친구였고, 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동양인은 무조건 중국인인 줄 알고 (이런 일 많이 겪었다 ㅠㅠ) 자기의 중국어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 용감함이란!!! 우린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원어민 교사를 데려다 놔도, 그 앞에선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는가? 이 아이들은 반대였다. 너무너무 신나 보였고,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에도 같이 피자 먹으러 가자고 초대를 했다. 가서 내내 동양에 대한 궁금증,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한국을 잘 모르고 있었다. 88올림픽까지 한 우리 나라를!!!), 동양에서 사는 것은 어떤지, 나는 동양인이 어떻게 혼자 아일랜드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등등... 실컷 수다를 떨었다.


두 시간 이상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킹으로 유명한 더블린의 템플 스트리트를 지난 가던 중 잠시 서서 공연을 듣게 되었다. 나름 신나는 음악이라서 맥주도 마셨겠다, 새 친구도 사귀었겠다 몸을 움직이며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 나의 새 이탈리안 친구가 옆에 서 있는 남자랑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봤더니, 이 남자는 영어를 못 하는 프랑스인이었고, 나의 이탈리안 친구는 즉석에서 영어로 부르는 버스커의 노래를 불어로 통역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의 충격이란... 나름 나는 이탈리아 애들이랑 두 시간 영어로 수다 떨어서 '오늘 영어 좀 되는구만!'하고 자뻑에 취해 있는 중이었는데, 내 또래의 이탈리안 친구는 무려 4개 국어 (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중국어)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외국어-외국어' 통역이지 않는가? Oh my god!이 절로 나왔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선택한 이유는, 그냥 한국과 가까워서였다. 유럽인들이 유럽 언어를 쉽게 접하고 배우듯이, 나도 중국어는 왠지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 근거로 치자면, 고등학교 3년 내내 한자 수업 '가, 가, 가'를 받은 나로써는 절대 피해야 할 언어였으나, 그냥 느낌으로 중국어를 선택했다고나 할까?

그 이후, 결국 일 년 또 휴학하고 중국 시골에 가서 지내면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중국 이야기도 할 기회가 있기를...


이것이 내가 영어 이후 외국어들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길에서 만난 친구에게 문화 충격을 받아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자극을 받고 나의 새로운 기회를 찾을 지 모른다. 이 때 이후로 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스승 삼기로 했다. 옛말에도 있지 않던가, 타산지석! 배울 점을 배우는대로, 또 문제점을 거울을 삼아, 그렇게 하루하루 나 자신을 돌아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성비 갑, 외국어 배우기 방법?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