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 and May 12. 2020

도시가 필요없는 세상

도심에선 기가 죽는다!

싱가포르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나와 우리 가족은 자발적인 의지로 인해 시내에 갈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는 곳은 싱가포르의 서쪽인데 대학교, 연구소 단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높은 빌딩이 많지 않고, 있다 해도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출퇴근도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하고, 차도 많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은 이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시내에만 나가면 난 기가 팍 죽는다. 일단 너무 높은 건물들이 서로 가까이 서 있으니 길을 찾으려면 고개를 위 아래로 몇 번이나 움직이며 이 건물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에, 1층에는 모두 비슷비슷한 커피숍이나 은행이 있는 곳에서 길 찾기는 쉽지 않다. 

기가 죽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걷는다는 것이다. 멋진 정장을 차려 입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한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다닌다. 그것도 너무 많은 사람이! 반바지에 티셔츠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내 구역에서는 거의 1-2년에 한 두 번 볼까말까 한 사람들 사이에서 좀 두리번거리다 보면 마치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촌부라도 된 기분이다. 




여전히 화려하지만 아무도 없는 텅 빈 도심 

싱가포르에는 높은 건물이 많다. 특히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도심을 지나치면서 보면 60-80층짜리 건물들이 도시 한가운데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섬 나라에 그렇게 높은 건물들이 몰려 있으면 가라앉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3월 이후, 요즘처럼 시내가 조용한 적은 없을 것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지금 전 국민 자가격리 중이라서 학교 가는 학생도 없고, 출근하는 사람도 없다. 그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해 놓은 건물은 그저 덩그라니 혼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싸고 화려하고 프로페셔널의 상징인 듯이 그런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집에서 편한 티셔츠에 편한 자세로 일하고 있다. 가끔 비디오 콜을 하다보면 top management team의 교수들도 어쩌면 그렇게 친근한 모습을 집에서 미팅을 하는지...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난 뒤, 우리는 다시 그 크고 화려한 건물이 가득한 도시로 돌아가게 될까?

우리 학교는 원래 온라인 수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제공해 줬지만, 이번을 계기로 더 많은 플랫폼이 생길 것이고 온라인 코스를 장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전망이다. Web (recorded) lecture, Web casting, Pod casting, Web conferencing, Web-based learning community 등을 사용하면 온라인 코스 운영이 어렵지만은 않다.

도시는 보통 시장 (market)을 중심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특히 교환, 교역 (trade)의 필요성 때문에 도시가 생겼는데 이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삶의 편의성을 위해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 도시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물리적인 시장이 꼭 필요한 사회도 아니고 (싱가포르의 초기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한국인들이 와서 만들었다!! 이 와중에 자랑스럽네), 집에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닳은 이 시점에, 우리에게 여전히 크고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도시가 필요할까? 



물론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문화의 유산과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나만 해도 어디 여행가면 유명한 건물, 역사적 건물, 심지어는 이제는 그 건물이 허물어져 터만 남은 곳까지 찾아다니며 구경하고 즐기고 감탄한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도시에 다닥다닥 지어놓은 건물들은 우리가 문화 유산으로 삼을만한 철학,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부의 과시, social status를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싱가포르에 높이 솟은 건물들은 대부분 은행 건물이다. 왜 지적 행위인 은행 업무가 그런 화려한 건물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건물들은 DBS, UOB, CITI 등등, 세계적으로, 또는 이 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은행 간판을 커다랗게 달고 있다.


이번 재택 근무 경험에 대한 반발로 사람들은 사무실이 있는 도시를 더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재택 근무 경험을 통해서 도시가 필요없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르겠다.




photo credit: https://www.wallpaperflare.com/city-during-night-near-body-of-water-singapore-skyline-marina-bay-sands-hotel-wallpaper-mcqpx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 코로나에 대해 대.단.히. 잘못 알려진 사실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