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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n 01. 2020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제목을 먼저 써 놓고 보니, 마치 무슨 대단한 금지, 터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미리 고백한다. 이것은 이번 싱가포르의 COVID-19 관련 8주간에 걸친 전국민 자숙 기간보다 쌓인 불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난 항상 내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간의 교류에 큰 의미를 두는 성격이 아니다. 심지어는 수업 없는 방학 기간 동안에는 학교 사무실에 출근해도 내 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일주일 내내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때도 많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도, 이번 8주 간을 지내면서 '내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금지되었기 때문에' 하고 싶어 몸살했던 일들이 생겨났다.


대학기간을 포함하여 고등학교 졸업 후 큰 행사 (예: 결혼식, 행사 사회...)를 제외하고는 화장을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립스틱이 사고 싶은지... 게다가 샛빨간 색이나 핫핑크 같은 색이 너무너무 끌리는 거다. 온라인으로 Sephora에서 파는 모든 립스틱을 다 구경한 것 같다. 결국 사지도 못 했지만 '아, 이 기간만 끝나면 무슨 립스틱 사서 바를까?'라는 (전혀 쓸데없는, 시간 낭비식) 고민에 몇 시간을 투자했다.

또 싱가포르에 오는 젊은 한국 여자들은 누구나 가 본다는 TWG tea 의 애프터눈 티를 난 20대부터 여기 와서 살면서 단 한 번도 먹으러 가보지 않았다. 일단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가며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는 것도 내가 보기엔 넘 비효율적이었지만, 난 커피족이기 때문에 그럴 바엔 그냥 스타벅스 아침 메뉴를 먹는 게 나한테는 더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8주 동안 TWG tea의 홈페이지를 10번은 넘게 들어가서 메뉴를 (농담하지 않고) 공부했다. 어떤 메뉴를 어떤 음료와 매치해서 먹을까, 단 것과 식사를 어떻게 주문해야 배도 많이 부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다 먹어볼 수 있을까... 아이들과 '우리 자숙 기간 끝나면 마리나 베이 지점에 있는 TWG 가서 애프터눈 티 세트 먹자!!'라고 주먹 쥐고 다짐했다. 사실 내가 시간을 들여 거기에 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난, 진심이었다.



이런 욕구들이 진정한 나의 욕구일까?

학자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내 뇌는 나를 속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냥 금지되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고,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는 욕망.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현상이다. 단발머리 규율이 있었던 나의 학창 시절에는 귀밑 3cm 규정을 어기고 4cm으로 기르기만 해도 얼마나 짜릿했던지... 지금은 많이 마시면 다음 피곤하기만 하고 찌뿌둥해지는 싫어서 많이 마시지 않는 술도, 고등학교 때에는 이리 보고 싶던지... 


어제부터는 갑자기 수영이 너무 하고 싶은 거다. 평소에는 사실 게을러서 자꾸 미루어왔던 수영 연습에 마치 자숙 기간만 끝나면 매일 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막 솟아오른다. 자, 어디 보자. 바로 집 앞에 있는 수영장을 곧 다시 열면, 난 정말 수영을 날마다 가서 한 시간씩 연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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