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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Mar 13. 2020

외국어와 국어

배우면 배울수록 쉬워진다?

나는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다중언어 처리, 인지 발달, 사회언어학적 변이형, 자연언어 처리 등이 내 주요 연구분야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언어를 말할 때, 배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여러 방면에서 살펴보는 일을 한다.

이 일을 하다보면, 인간의 두뇌가 참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율적이다 못해서 게을러 보이기까지 한다. 만약, 내가 이미 두 개의 언어를 말할 수 있거나, 배웠다고 해 보자. 세 번째 언어를 배울 때 두뇌는 먼저 이 세 번째 언어에 대한 정보가 좀 모아지면 바로 전에 알고 있는 언어 중에서 더 비슷한 언어를 찾아낸다. 그리고 나서 ctrl+C, ctrl+V. 비슷한 언어의 구조를 일단 머리 속 세 번째 언어 정보를 모으는 방에 카피해 놓고, 세 번째 언어에 대한 단어나, 문법을 배울 때마다 거기에다가 끼워 넣는다. 하지만 구조가 완전히 똑같은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사실은 맞지 않는 부분까지 막 끼워서 맞추다 보면 세 번째 언어에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이걸 transfer (전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것을 facilitative/ non-facilitative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전에 배웠던 언어 때문에 세 번째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배우다 보면, '어, 이건 왜 안 맞아?' 라고 느끼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전이와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전이를 모두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말해왔듯이, 외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쉬워질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일단 ctrl+C, ctrl+V 하지 못하더라도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종의 '짬밥'이 생기기 때문에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또는 문법 규칙을 빨리 발견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아이들이 여러 개의 유럽 언어를 쉽게 배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언어 자체도 비슷하기도 하겠지만, 나라가 가까워서 이동이 잦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그럼? 우리도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울 때 유럽 아이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어 문법이나, 중국어 한자 단어들은 한국인들이 국어만 잘 배웠다면 금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국어를 잘 배웠다면'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외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 그냥 국어 공부를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학계에서 이미 근거를 가지고 증명이 된 사실이다. 특히 국어 공부를 좀 더 인지적으로 (영어 단어 외우듯 단어의 뜻을 외우고, 문법 규칙을 공부하고) 하면 나중에 외국어를 배울 때 크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 스킬세트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쉬워지기도 하지만, 일단 모국어 지식이 풍부하다는 전제하에 이 모든 것이 더 촉진된다. 얼마 전에 EBS '다시 학교' 다큐멘터리에서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이라는 꼭지를 봤다. 그냥 문제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어 교육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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