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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Mar 13. 2020

예상치 못한 한국어 유머

오늘 학생들이 쓴 한국어 문장을 채점하다가 보니 몇몇 학생들이 비슷한 실수했다.


"옷이 더러워서 옷을 씻었어요."


한영 사전을 보면 '씻다'는 'wash'라고 나와 있지만, 어떤 것을 씻을 수 있는지 제한적 용법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예를 들어서, 머리는 '감다', 옷은 '빨다', 그릇은 '부시다'... 등, 특정 대상은 'wash'를 그저 '씻다'로 말할 수 없는 것이 한국어이다. '옷을 씻었어요'를 보고 피식 웃었는데, 가끔 학생들은 의도치 않게 나에게 큰 웃음을 준다.

"그 식당 냉년이 유명해서 좋아해요."


또 오늘은 수업에서 학생들과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왜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설명하는데 '제가 입은 옷이 비싸요.'라고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동사에다가 '은'을 붙이면 이미 끝난 행동을 나타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지금 먹 빵이 맛있어요.'지만 어제 이미 끝난 행동에 대해서는 '어제 먹 빵도 맛있어요.'라고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입다'는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 왜 '입은'이라고 쓰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라면 가질만한 것.

나도 이런 현상은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입다'는 사실 옷가지가 이미 몸에 걸쳐져 있는 상태를 가리키지 않고, 어떤 옷가지를 몸에 걸치는 과정의 일련의 행동을 가리키는 동사이다. '입다' 외에도 '신다, 쓰다' 같은 신발, 모자를 걸치는 행위, '(교통수단을) 타다' 등의 동사도 이런 일련의 행동을 가리키는 동사에 해당된다. 아무튼, 이런 어휘의 상세한 의미를 아는 것은 바른 국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차이에 대해서 인지적으로 알 기회가 없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학교에 다닌다. '아휴, 국제학교 다니니 영어는 그냥 배우겠어요!' 라는 부러움 섞인 한국에서 사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이 학교의 영어 커리큘럼은 한국의 한국어 교육과 비교하여, 그 비중이 대단하다. 일단 학교에,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수업은 있는데 '영어' 수업은 따로 없다. 왜냐하면 영어는 '읽기, 쓰기, 문법과 어휘' 수업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기능을 깊이 있게, 많은 시간을 들여 따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단어 시험, 라틴어 어원 시험, 문법 시험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있다. 5학년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영어'라는 과목이 아니라 기능으로써 읽기, 쓰기, 문법/어휘를 따로 나누어 가르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읽기와 쓰기는 다른 모든 과목의 기본 능력이기 때문에 기초학력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단어 철자를 어마어마하게 틀리는 유치원, 초등1학년부터 단락 쓰기를 하는데, 틀린 걸 고치려들지 않는다. 교사는 아이들이 생각을 논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서,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지, 구성이 논리적인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 따라서 영어 교육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를 알고, 읽기 문제 풀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읽고 쓰는 기능에 대해서 가르치고, 단어도 엄청 외우게 시키기 때문에 (철자와 의미)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곧잘 한국어 문법도 나름 분석해서 일장연설을 하곤한다.

"엄마, 빨간색은 '빨개요'라고 말할 수 있지? ('빨갛다' 기본 동사형을 말함) 그런데 왜 초록색은 초래요?'라고 못 해?"

작은 아이도 가끔 나름의 문법 규칙을 세워서 새로운 한국어 문장을 시도하는데 얼마 전 한국에서 내가 부모님께 존댓말 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저녁 잡았어?"

엥? 저녁을 잡아와서 먹는다는 건가? 알고 보니 내가 '저녁 잡수셨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름 존댓말을 반말로 바꿔서 이야기한 것이다.

국어에 대해서 아이들이 고찰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다. 가끔 그것이 예상치 못한 한국어 유머가 되어버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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