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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l 04. 2020

4.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교육 (2)

내가 처음 싱가포르에 왔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멀티링구얼리즘 연구를 위해 학생들의 가정 내 언어, 외국어 학습 경험에 대해 꾸준히 조사를 하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와 비슷한 트렌드로, 민족과 상관없이 해마다 집에서 영어가 쓰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내가 연구하는 대상이 대학생이다 보니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집에서 영어를 주 언어로 쓰고 있다. (2020년 3월 조사 결과, 87%가 집에서 영어를 주로 사용) 즉,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을수록 집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싱가포르인들은 대화를 할 때 한 문장을 온전한 하나의 언어로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그나마 낫지만 대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심지어는 학생들도 친구와 이야기할 때에는 '저게 영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중국어, 호키엔, 말레이어가 섞인 문장을 구사한다.

물론 이 문장은 아주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렇게 느 정도 러 언어가 짬뽕된 문장은 날마다 들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4개의 큰 문제가 있다.


1. 타밀어, 만다린 중국어, 광둥어, 영어, 말레이어, 호키엔어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 안다고 해도 이 조합에 익숙지 않다면 이게 대체 어느 부분에 무슨 단어가 섞인 것인지 추적 불가하다. 따라서 이런 문장은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통하지 않아서, 언어의 범용적 활용에 제한된다. 이런 영어(영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를 구사하면 다른 나라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과 말이 안 통한다는 뜻이다.


2. 전달력이 떨어지는 문장이다. 이런 문장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표면적 의미보다 이것을 말하는 사람의 의도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화가 났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한국말을 할 때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모든 언어에는 서법이라는 게 있는데 서법 전달이 되지 않으면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3. 글로 남길 수 없다. 언어활동은 물론 말로 할 때와 글로 할 때 다른 스타일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런 문장은 글로 쓸 수가 없다. 각각 다른 문자를 사용하기도 하고 글로 적었을 때 과연 가독이 잘 될 지도 모르겠다.


4. 마지막으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실제로 이런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중언어가 우리 두뇌 인지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누리지 못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언어를 알고 사용하는 것의 가장 큰 인지적 장점은 바로 제어 (Control) 능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Bialystok). 무슨 의미냐 하면, 내 머릿속에 있는 여러 언어의 구조, 단어 정보 중 하나의 언어에 속한 정보만 골라서 말을 해야 하다 보니 다른 언어의 정보를 억제해야 하고, 그런 억제하는 훈련이 지속되다 보면 어떤 정보든 처리 시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는 능력이 좋아진다는 말이다.


아마 아이큐 테스트를 할 때 이런 문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색으로 쓰인 단어를 읽는데 단어의 의미와 단어가 쓰인 펜의 색이 다를 때, 우리는 글씨를 읽어야 하지만 자꾸 글씨의 색깔을 말하게 된다.

Stroop test

인지 제어 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색깔을 인지하려는 두뇌의 작용을 제어하고 글씨에 집중하도록 두뇌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다.


여러 언어를 배우고 말하다 보면 이런 일반적인 인지 제어 능력이 좋아지는데, 사실 싱가포르에서 구사하는 언어는 여러 개를 섞었다 뿐이지, 실제로 이런 제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한 대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들을 언어 종류에 상관없이 나열하다 보면 결국 위에 예를 든 그런 문장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싱가포르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가 이런 언어 습관에 익숙하다 보니 코드 스위칭 (한 문장이나 단락 안에서 여러 언어로 옮겨가며 구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결국 작년에 교육부 장관 옹예쿵은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교육을 재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여러 가지 기초 연구를 취합하여 그 연구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방향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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