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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l 09. 2020

5.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교육 (3)

앞의 글에서는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교육의 시작과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이중언어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실 이유야 어쨌건, 싱가포르 초기 정부에서는 이중언어를 통해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기조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영국 식민지 하에 영어를 사용하여 지배자와 동등하게 신분 상승하려는 마음 + 세계 언어 헤게모니 하에서 영어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 중국계 말레이인들의 싱가포르 인구 분포 등을 생각했을 때 이런 이중언어 정책을 시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열이 뜨거운 싱가포르에서는 이런 이중언어 교육과 정책이 결국은 시험과 맞물려 엉뚱한 폐혜를 만들어냈다.


모국어 과목이 중학교 입학 시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이 나라 아이들은 모국어 조기 교육을 받는다 (주로 중국어). '모국어 조기 교육'이라니, 무슨 이런 해괴한 말이 다 있나! 앞의 글에서 썼다시피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일수록 가정 내에서 영어를 쓰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말이 모국어지, 집에서는 영어만 사용하고 실제 모국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교과목 중 하나로 배우게 되는 것이 그 현실이다. 특히나 중국어의 경우, 읽고 쓰기는 말하고 듣기와 달라서 한자를 모두 외워야 하는데 암기할 한자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집 근처, 아파트 1층, 상가 건물들에 중국어 학원 일색이다. 그 중 유명한 프랜차이즈 학원까지 등장했는데 우리 딸도 유치원 때 친구따라 다닌 적이 있을만큼 재미난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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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국어 교육과 사용을 강조하기 위해 입시에까지 모국어를 포함시켰건만 결국은 조기교육, 사교육만 거세지고 실제로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주변 중국계 싱가포르 친구들을 보면, 다들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중학교 입시 시험을 위해서 중국어를 '사교육'시키고, 중국어가 선택 과목이 되는 중학교부터는 중국어를 공부시키지 않겠다고 한다. 그 시간에 다른 과목 공부하기에도 바쁜데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을 중국어를 뭐하러 힘들게 공부하냐는 것이다. 결국 모국어 수업은 시험 과목으로 전락하고 말뿐인 '모국어'가 되었다.

물론 모국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들도 여럿 봤다. 하지만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가 제일 중요한데 (예를 들어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가장 인기 많은 법대와 의대에 들어가려면 영어 성적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 모국어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가끔은 나에게 '야~ 네 중국어가 나보다 더 자연스럽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물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따라갈 수 없지만 이것이 바로 이들이 시험용으로 중국어를 배웠다는 증거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부에서는 여러가지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내가 연구하는 멀티링구얼리즘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의 장점이 무엇인지 많은 연구비를 들여 연구하고 있으며, 정책과도 연계하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영어, 모국어 이외에 추가 외국어를 넣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것은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하였다. 아마도 앞으로 싱가포르 정부는 이런 이중언어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다시 정비할 것이다. 나는 의견을 낼 기회가 될 때마다 중학교 입학 시험에서 모국어 과목을 없애면 학생들의 모국어 실력이 분명히 더 좋아질거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영어를 시험 과목에서 빼면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난 진심으로 믿는다. 그 놈의 시험이 문제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로도 외국어 수업에서 학생들의 과제에 대한 태도 (긍정적 태도) 와 외국어 능력 성취는 정비례하지만 할애한 시간과 외국어 능력은 반비례한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즉, 우리는 모두 시험을 싫어하면서도 어떻게 그 시험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 꼭 잘 하는 것도 아니라는데 왜 이리 오래, 많이 공부하는 것에 목 매는 지 모르겠다.


앞으로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교육 정책도 이번 선거 (GE2020)가 끝나면 다시 한 번 화두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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