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정부나 교육부에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싱가포르는 철저한 엘리트 교육이다.
게다가 능력주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교육 자체도 엘리트 교육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아주 스마트하게도 능력주의나 엘리트 교육이 가져올 수 있는 대부분 국민들의 반발은 최소한의 의식주를 정부에서 나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무마하고 있는데, 정부 소유의 주공 아파트 (HDB)를 많이 지어서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일자리 창출, 다양한 교육 트랙을 마련해 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정책이다.
주택이나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기도 하고,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많은 상황들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교육 트랙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초등학교부터 엘리트 교육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그 전해 7-8월에 아이들의 학교를 등록하게 되어 있는데 (2021년 1월 입학하는 학생은 2020년 7-8월에 초등학교 신청 등록), 한국에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동사무소에서 지정해 주고 입학 통지서를 보내는 반면, 싱가포르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초등학교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있다. 물론, 집과 학교 간의 거리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거리가 가까운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지만 그 외에도 부모가 그 학교 졸업생인 경우, 부모가 그 학교를 위해서 그 동안 봉사 활동을 하여 포인트를 쌓은 경우, 형제자매가 재학생인 경우에는 우선권을 받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 한국에서도 많이 들어봤을 래플스 스쿨의 경우, 그 동네 집값은 같은 수준의 다른 동네 주택과 비교하여 매우 높으며 (소유 말하는 학군), 대대손손 이어져 그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 나라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좋은 학교', '나쁜 학교'로 나뉘어 있으며,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는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물론 여기에서 좋은 학교의 기준은 좋은 중학교를 거쳐 인문계를 간 다음, 좋은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란 뜻이다.
The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 (PSLE)란, 초등학교 졸업 시험을 뜻하는데 싱가포르인들이 처음 겪는 국가고시이며, 평생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굳게 믿는 그런 시험이다. 주변에서도 아이가 PSLE 시험을 치루는 6학년이 시작할 때 직장을 그만 두거나 휴직을 하는 부모가 많이 봤다. 왜냐하면 이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가 갈 수 있는 중학교가 정해지고 그 중학교에서도 인문계를 갈 수 있을지 말지를 정하기 때문이다. 약간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중학교 입학 시험,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치뤘던 때처럼 여기는 아직도 서울의 '경기고'같은 그런 학교들이 많고, 출신 대학 뿐만 아니라 출신 중/고등학교가 한 사람의 수준을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은 문화가 팽배하다.
올해 PSLE를 보는 아이가 있는 한 행정실 직원은 COVID19 기간 중 재택 근무하다가 퇴사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온라인 수업을 아이가 잘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짐을 챙기러 학교에 왔던 그 분을 잠깐 봤는데 잘 지내냐고 하니까 아이 시험 공부 봐주느라 스트레스가 심하다면서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물건을 챙기고 계셨다.
'전 학교 다닐 때 평범한 수준으로 공부했고, 대학에 온 후에도 그냥 평범하게 지내다가 직업도 바꾸고 그랬는데, 지금 먹고 사는데 지장 없어요.'라고 말해 줬더니, 그 분 말씀이
'Singapore is no forgiving culture.' 즉, 실패를 봐 주지 않는 문화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한 단계에서라도 실패를 하면 안 되고, 한 번 아래로 내려가면 절대 만회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학생들도 힘들기는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만난 많은 학생들이 이야기를 한다.
'싱가포르는 나라만 부자이지 사람들은 다 가난해요.'
'열심히 일해서 나라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아요.'
'저는 꼭 은행에서 일하고 싶어요.' (놀랍게도 전공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은행원'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참 많다.'
'빨리 은퇴해서 집에서 쉬는 게 꿈이에요.' (아직 사회 생활 시작도 안 한 학생들이!!!)
'집에서 자는 게 제일 좋아요.' (피곤에 찌들어 하고 싶은 게 없다.)
결국 엘리트 코스를 밞아 온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세계 랭킹 십 몇 위 대학이라는 곳에 도달했지만, 꿈도 없고 삶이 벌써 피곤하고 나라에 불만만 많고 다른 나라를 동경하며 돈 많이 벌어서 은퇴하는 것이 꿈이란다. 엘리트 교육을 받기 위해서 많은 재미와 시간을 희생하고, 또 노력에 노력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여러 명의 몫의 일을 효과적으로 해 내는 똑똑한 기계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다 소모되면 그런 엘리트는 좀 더 덜 피곤하고 더 욕망이 커다란 엘리트로 교체된다. 엘리트가 10명의 노동을 해 낸다면 그 댓가는 3인분의 월급이다. 결국 배부른 사람은 누구?
열심히 사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엘리트 교육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나라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엘리트 교육은 철저하게 능력주의를 떠받치기 위한 제도이지만 사실 다양한 트랙을 마련해 주고 그 트랙을 선택한 사람들도 최소한의 먹고 살 만큼은 보장해 줌으로써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대를 나와도 직장을 구하기가 쉽고, 또 이직이 자유로우며, 재취업도 어떤 연령대이든 쉽게 할 수 있다 (물론 연봉이나 조건이 마음에 얼마나 드는 지는 차치하고). 사실 싱가포르에는 대부분 외국계 회사만 있다 보니 한 직장에 오래 다닌다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 교육 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냥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삶은 살 수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워하는 지는 개인에 달렸다)
하지만 엘리트 교육이라는 몇 안 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쏟아야 하는 노력과 시간과 돈은 이루말할 수가 없고 또 그것을 동경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한국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예를 들면, 전문대 코스를 갔다가 우리 4년제 종합대학으로 일종의 편입하는 학생도 많고, 또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에 가거나 유학을 가는 사람도 참 많다. 물론 본인의 어떤 깨달음이나 필요로 인해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저 간판을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그런 자리로 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다투는 이상한 꼴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엘리트 교육에 목 멘, 그런 사람들의 실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