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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Aug 03. 2020

여자의 재택 근무

3월부터 지금, 8월 초까지 나의 10살, 8살짜리 아이들 (한국 학교로는 5학년, 2학년)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방학으로 넘어갔다. 나 역시 그 기간 동안 '재택 근무'라는 이름 아래 집에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재택'은 맞지만 '근무'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는 두 달 내내 선생님이 보내 준 워크시트를 풀고 다시 스캔해서 보내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퀴즈를 풀거나, 비디오나 녹화하거나 오디오를 녹음해서 보내는 둥 많은 Production 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면대면 수업에서 중요하게 이루어지는 exposure (지식이나 정보에의 노출), input (지적 정보의 입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고, 따라서 정보를 받지 못한 채 뭔가 과제를 해서 제출해야 하는 생산 활동의 전 단계는 부모가 메워야 했다.

사실 '부모'라고 썼지만 대부분의 그 시간과 노력은 '엄마'인 나로부터 나왔고, 동일하게 재택 근무하는 남편은 쉬는 시간을 내어 네이버 뉴스를 샅샅이 훑을 시간은 있을지언정 아이들의 학습에는 관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1. 네가 더 잘하니까

2. 네가 더 빨리 처리하니까

3. 난 이 나이 땐 엄마, 아빠 도움 없이 알아서 했어. 애들도 독립해야지!


사실 이 이유에 하나하나 반박하거나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할 말은 너무 차고도 넘치지만!!!). 아무튼 결국 아이들의 온라인 학습을 돕는 역할 + 방학 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는 역할의 많은 부분은 나에게 맡겨졌다. 나도 그 기간 동안 수업, 연구, 출판, 강연 등 빽빽한 스케줄이 있었지만 나 나름대로 시간 조절을 해 가면서 주어진 일들을 다 꾸역꾸역 해내야만 했다. 방학이 시작된 후에도, 보통 같았으면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운동하러 다니거나, 다 같이 여행을 가거나 할 아이들이지만 하루 종일 그냥 온 가족이 모여 집에서 지내는 게 모두에게 쉽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어쨌든 흐르는 동안, 이번 여름은 특별한 시기라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같이 있어 보겠냐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이러스가 잘못이지, 가족 간의 시간을 갖자는 자위 해 가면서 견뎌야만 하는 것은 나였다.



정부에서는 가장 손쉽게 선택한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 방안은 모두를 집 안에 가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겨우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조차도 각자의 삶을 각자의 터전에서 살다가 한 공간에 가두어졌을 때, 갑자기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다시 재배치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의심 없이, 재택 근무, 재택 학습의 기간 동안 추가된 가족 모두를 위한 노동은 그 가정의 '엄마'가 담당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또 주변을 봐도, 내가 원래 하지 않았던 나의 역할이 갑자기 이 기간 동안 추가되었는데,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과연 그랬는가?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봤다. 역설적이게도 new normal 시대에, 바이러스에게 공격받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든 영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앞다투어 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여성의 역할, 그중 엄마의 역할은 크게 재정립되고 있는데 아무도 그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결국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엄마가, 엄마는 모든 걸 다 참아내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역할을 묵묵히 맡는 것이 미덕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의 공약 중 '슈퍼 우먼 방지법'이라는 내용을 가장 인상 깊게 본 사람이다. 나로 말하자면, 수능을 본 다음 날부터 경제 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결혼 후로는 이미 10년 이상 가정에 경제적으로도 더 큰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은 엄마라는 이유로 내가 90% 이상을 맡고 있으며 멍청하게도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애들을 더 잘 알고, 애들을 더 잘 돌보니까...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나의 애들을 더 잘 알고, 잘 돌보았던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들인 노력과 시간의 문제이다.


이제 돌봄이라는 것조차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재택 근무 시대에 나는 일과 아이들을 둘 다 잘 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 암시를 해야 할까? 앞으로 나의 재택 근무는 12월까지 계속 될 것이다. 아이들은 다행히 학교로 돌아간다. 나에게 추가로 주어진 역할은 누가 부여한 것일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 떠맡아야 하니 내가 그냥 하지 뭐, 하고 적당히 넘어가기에는 너무 중요하고도 큰 역할.

이것은 사실 사회가 책임져왔던 교육의 역할이 가정으로 유입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사회적 역할이 가정으로 전가된 셈인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지금 가정에서 부모가, 특히 엄마가 이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왜 사회적 책임이 가정의 성인 여성에게 전가된 이 상황을 누구도 함께 책임지려 하지 않는가? 그저 엄마라는 이름으로 견디고 이 상황이 곧 끝날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며 지속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나?

아이들의 교육은 이미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역할로 공히 사회적으로 약속된 바이다 (최소한 의무교육은). 세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며,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교사에게 공무원과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 학교는 반드시 그 맡은 역할에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따라서 팬데믹을 핑계로 이 역할이 엄마에게, 사회적 논의나 합의 없이 맡겨진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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