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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Nov 23. 2020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어때서?

얼마 전 라디오에서 패널들이 나와서 듣기 거북한 한국어 표현으로 '-은 것 같아요, -는 것 같아요'를 꼽았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지적당하는 한국어 보조사 표현 '은/는 것 같다'뿐만 아니라 '그런가 봐요', '그렇게 보여요' 등등, 불확실성(uncertainty)을 강조하는 한국어 보조사는 정말 많다. 라디오 패널들의 의견은 '은/는 것 같다'는 자기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에둘러 말하는 '피해야 할 한국어 표현'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다 (앗, 나도 여기에 자연스레 '는 것 같다'라고...). 심심하면 가끔씩 지적당하는 불확실성을 포함한 한국어 표현들, 정말 지적 당해 마땅하며, 피해야 할 표현들일까? 또는, 애초에 사람들은 정말 자기 의견에 확신이 없어서 이런 표현을 선택한 것일까? 언어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표현들이 한국어에 발달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 나고 언어 났지, 언어 나고 사람 났나?

즉, 이런 표현들이 발달한 것은 사회, 문화적인 요인이 영향이며, 한국어에 존재하는 다양한 겸양 표현과 존대어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의견을, 특히 상대방과 의견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어 언어문화에 존재하는 겸양 표현과 존댓말에 정면 배치되는  경우가 된다. 존댓말과 겸양 표현은 어휘적, 형태소적, 보조사, 담화/화용 표현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은/는 것 같아요'를 쓴다고 해서 결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자신감이 없거나, 확신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즉, 처음부터 '그런 것 같아요'라는 것은 겸양 표현의 하나일 수 있다.


게다가 사회언어학 관점에서 보면 어떤 언어에 존재하는 변이형이나 다양한 표현들은 언중(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연 발달/변형된 것이며 그것은 사람들이 외재적으로 결정한 어떤 규칙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나는 내 의견에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으니까 이런 표현을 사용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선택일 것이다.

또한 한국어만 간접적인 의견 표현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영어를 사용할 때에도 격식을 차린 토론에서는 좀 더 예의 바르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 'I assume..., I guess..., I like to put forward..., I would say...'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남의 의견에 토를 달 때에도 'I wonder if it is really correct, I don't think this is going to work...'등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어는 항상 예의 바르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것 같아요'를 너무 남발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표현이 그렇게 '지양해야 할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 그저 우리말의 특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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