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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an 09. 2021

등용문에 들어갈 기회

우리는 흔히 고시, 또는 좋은 학벌을 등용문으로 생각해 왔다. 근대 사회 이전에도 이미 과거를 본다거나 학문을 통해서 관직에 나아가거나 출세를 하는 방식이 흔히 있었다. 물론 출신 자체로의 제약이 있기는 했으나 집안 아무리 좋다 해도 뭔가 출세를 위해서는 학문을 갈고닦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출신에 상관없이 누구나 등용문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개천에 용 나는 경우’가 많아졌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을 통해 출세하는 것, 등용문에 나아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이 기회가 공평하게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으며, 누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면서, 여전히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지 나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했고, 게다가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냥 결과를 보면 마치 나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 같지만, 막상 잘 살펴보면 그 뒤에는 운이라든가, 기회 자체를 고려할 수 있었던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해 보자. 그랬다면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꿈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부모님 건강이 좋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이렇게 직장을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내 자신의 앞가림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공부의 기회를 고려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거나, 건강이 안 좋은 가족이 있거나, 또 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은 등용문의 기회조차 평등하게 누릴 수 없다. ‘선택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즉 교육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어떤 개인의 노력으로 치부하고, 가난을 개인의 책임 또는 게으름의 결과로 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공부는 무슨 공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경야독하면 되지.


심지어는 교육 현장에서도 자본주의적 경쟁이 치열한데 경제적 책임을 지면서 공부를 하면 결과가 좋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일.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은 반만 사실이다. 기회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기회를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용문에 오르지 못해 어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개인적으로 책임지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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