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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Mar 10. 2022

어떻게 시옷하고 쌍시옷이 같냐고!

한국어 발음 수업에서 열통 터진 이야기

어릴 때 한창 홍콩 영화에 빠져 홍콩 말로 장국영이 부르는 노래를 뜻도 모르고 한글로 발음만 적어다가 따라 부르던 생각이 난다. 진지한 장면에서 야반가성에서 오천련이랑 장국영이 같이 부르는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은데 웬걸, 이 홍콩 발음은 자꾸 문장 끝마다 '어잉, 아잉'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당최 그 발음을 들을 때마다 한글로는 자꾸 다르게 적게 되었다.


모든 언어는 발음 구조도 다르고 각 소리가 주는 느낌도 달라서 이렇게 아무리 내가 천 번, 만 번을 들어도 홍콩 말을 한글로 정확히 적기란 불가하다. 한글은 한국어의 소리를 적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라서 한글이 대표할 수 있는 소리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소리에 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에 없는 종류의 유성음, 비음 등은 한글로 적기가 난감하다.

직장에 다니며 일본어를 배울 때 우리 선생님께서 일본어는 '가' 발음이  두 개 있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무성음 '가'와 유성음(탁음) '가'였는데 사실 한국어 '가'는 유성음 발음이 없다. 한 달 이상, 나는 그 두 개의 '가'가 다르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 탁음을 구분하는 척만 했지, 절대 두 개의 '가'를 발음만 듣고는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소리가 '다르게' 들렸고, 또 한참이 지나서야 두 개의 소리를 다르게 낼 수 있었다. 


아마도 외국어를 배우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생물언어학적으로 당연하다. 우리의 청각 시스템은 태어날 온갖 소리를 구분하지만 생후 년쯤 지나면 예민함이 매우 떨어져서 (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결국은 생후 안에 들어 보지 못한 소리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릴 외국어를 배우면 발음이 좋은 것은, 발성 기관의 움직임도 관계 있지만 청각 시스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 외국어를 배울 모국어에 없는 소리를 절대 들을 없는 것은 아니니 희망을 포기하거나, '것 봐, 내가 이래서 외국어를 배운다니까!'하고 핑계 대지는 마시길... 꾸준히 소리의 차이에 집중하여 듣다 보면 들을 있게 되니까!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기엔 첫 몇 주는 목이 남아나질 않는다. 한글 수업 때문인데, 한글 자체는 빨리 배울 수 있는 엄청나게 우수한 시스템이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다른 자모가 왜 소리가 같냐, 또는 하나의 자모가 때에 따라서 왜 다르게 소리가 나냐 등의 온갖 질문, 불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발음해 주는 수밖에 없다. 또는 내 입이랑 혓바닥 움직임을 보라고 민망함을 무릅쓰며 입을 최대한 카메라 가까이 대고 (온라인 수업 중...) 보여 주기도 한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아오, 무슨 엑스레이나 MRI 같은 걸로 해부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진짜 학생도 답답, 나도 답답하다. 나는 사실 조음 방법(혀 위치, 입을 벌리는 정도, 목구멍에서 바람이 바오는 세기 등등)을 알려 주자는 입장에 가깝다. 왜냐하면 첫 일주일 안에 모국어에 없는 한국어 발음을 모든 학생이 듣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음 방법처럼 시각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성인 학생들에겐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나름의 고구마를 내려 주는 사이다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단어의 첫소리에 오는 ㄱ이나 ㅅ같은 소리는 쌍기역이나 키읔, 그리고 쌍시옷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이 모두가 소리가 안 들려서 생기는 문제이다. 대부분 내가 한 열 번쯤 다시 발음해 주면 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알겠다고 하는데 가끔은 진짜 죽어도 ㅅ과 ㅆ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생에게는 극약 처방이 있다.


"애인한테 뭐라고 하니? '사랑해'하니, '싸랑해'하니?"


그럼 드라마는 제법 보고 온 아이들이라 뭔가 좀 다르기는 하네... 정도로 봐주고 그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이런 소리가 안 들리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AI 기반 한국어 발음 평가 프로젝트를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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