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발음 수업에서 열통 터진 이야기
어릴 때 한창 홍콩 영화에 빠져 홍콩 말로 장국영이 부르는 노래를 뜻도 모르고 한글로 발음만 적어다가 따라 부르던 생각이 난다. 진지한 장면에서 야반가성에서 오천련이랑 장국영이 같이 부르는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은데 웬걸, 이 홍콩 발음은 자꾸 문장 끝마다 '어잉, 아잉'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당최 그 발음을 들을 때마다 한글로는 자꾸 다르게 적게 되었다.
모든 언어는 발음 구조도 다르고 각 소리가 주는 느낌도 달라서 이렇게 아무리 내가 천 번, 만 번을 들어도 홍콩 말을 한글로 정확히 적기란 불가하다. 한글은 한국어의 소리를 적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라서 한글이 대표할 수 있는 소리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소리에 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에 없는 종류의 유성음, 비음 등은 한글로 적기가 난감하다.
직장에 다니며 일본어를 배울 때 우리 선생님께서 일본어는 '가' 발음이 두 개 있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무성음 '가'와 유성음(탁음) '가'였는데 사실 한국어 '가'는 유성음 발음이 없다. 한 달 이상, 나는 그 두 개의 '가'가 다르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 탁음을 구분하는 척만 했지, 절대 두 개의 '가'를 발음만 듣고는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소리가 '다르게' 들렸고, 또 한참이 지나서야 두 개의 소리를 다르게 낼 수 있었다.
아마도 외국어를 배우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생물언어학적으로 당연하다. 우리의 청각 시스템은 태어날 땐 온갖 소리를 구분하지만 생후 일 년쯤 지나면 그 예민함이 매우 떨어져서 (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결국은 생후 첫 일 년 안에 들어 보지 못한 소리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면 발음이 좋은 것은, 발성 기관의 움직임도 관계 있지만 청각 시스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에 없는 소리를 절대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니 희망을 포기하거나, '것 봐, 내가 이래서 외국어를 못 배운다니까!'하고 핑계 대지는 마시길... 꾸준히 소리의 차이에 집중하여 듣다 보면 들을 수 있게 되니까!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기엔 첫 몇 주는 목이 남아나질 않는다. 한글 수업 때문인데, 한글 자체는 빨리 배울 수 있는 엄청나게 우수한 시스템이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다른 자모가 왜 소리가 같냐, 또는 하나의 자모가 때에 따라서 왜 다르게 소리가 나냐 등의 온갖 질문, 불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발음해 주는 수밖에 없다. 또는 내 입이랑 혓바닥 움직임을 보라고 민망함을 무릅쓰며 입을 최대한 카메라 가까이 대고 (온라인 수업 중...) 보여 주기도 한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아오, 무슨 엑스레이나 MRI 같은 걸로 해부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진짜 학생도 답답, 나도 답답하다. 나는 사실 조음 방법(혀 위치, 입을 벌리는 정도, 목구멍에서 바람이 바오는 세기 등등)을 알려 주자는 입장에 가깝다. 왜냐하면 첫 일주일 안에 모국어에 없는 한국어 발음을 모든 학생이 듣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음 방법처럼 시각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성인 학생들에겐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나름의 고구마를 내려 주는 사이다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단어의 첫소리에 오는 ㄱ이나 ㅅ같은 소리는 쌍기역이나 키읔, 그리고 쌍시옷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이 모두가 소리가 안 들려서 생기는 문제이다. 대부분 내가 한 열 번쯤 다시 발음해 주면 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알겠다고 하는데 가끔은 진짜 죽어도 ㅅ과 ㅆ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생에게는 극약 처방이 있다.
"애인한테 뭐라고 하니? '사랑해'하니, '싸랑해'하니?"
그럼 드라마는 제법 보고 온 아이들이라 뭔가 좀 다르기는 하네... 정도로 봐주고 그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이런 소리가 안 들리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AI 기반 한국어 발음 평가 프로젝트를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