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우리 사회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의 시간과 노력이 가치 있다. 고된 시간과 쓰라린 고통이 끝나고 나면 찬란한 미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순간은 무가치하다.
수험생활을 견딘 힘은 대학이란 찬란한 시간에 대한 희망이었고, 군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역 후의 달콤한 순간에 대한 상상이었다. 취직을 준비하는 이 시간은 앞선 경험으로 다소 무뎌졌다. 직업을 가져도 대단한 행복이 오지 않고, 길고 긴 시간을 돈벌이에 할애해야 한다. 나를 쏟아낼 또 다른 동기가 취직 이후에 있을 거란 확신도 없다. 어쩌면 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만 기다릴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에 우리의 현실은 비참하다. 희망은 사라졌다.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다.
책은 이러한 부정적(?), 현실적(!)인 생각이 맞다는 걸 지극히 건조하게 대답한다. 누군가에게는 뜨겁거나 너무나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지만 적어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한입 베어 물면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바게트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의 수많은 지식은 정보란 탄수화물을 채워줬지만, 희망이란 수분을 야금야금 앗아갔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며 다른 희망이 떠올랐다. 바게트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다면? 햄을 올려 먹는다면? 토마토소스를 찍어 먹는다면? 분명 맛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꾸면 된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확신을 다시금 안겨줬다. 이 현실에 가진 불만은 당연하였음을 알려줬다. 재능은 당연하지 않은 우연과 행운 위에 피워낸 꽃과 같다. 노력해서 되지 않는 일은 분명히 있으며, 그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회는 여전히 모두를 품지 못하며, 인류의 계층화와 지배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혁명과 변혁의 과정을 거치며 등 떠밀리듯 높으신 분들이 준 당근이 '기회의 평등'이다. 어쩌면 당근이 아닌 조금 다른 굴레이자 채찍일 수도 있다.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으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출 곳도 아니다. 세상은 또다시 바뀌어야 한다.
샌댈 교수는 말한다. 'It's not your fault'. 그래, 나의 잘못도, 당신의 잘못도,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사실은 하나도 메마른 것이 아니었다. 차갑지만 따뜻한 위로이자 충고이며 경고가 책에 한 아름 담겨있다. 그 충고를 새로운 세상에 현실로 발현시키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인류는 결국 또다시 진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p.s 마이클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조던이 등장했다면, 이제는 르브론 제임스가 등장한다는 점이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