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이 펼쳐질 줄 알았어
제법 신규직원 티를 벗고 업무에 익숙해진 공무원 3년 차 즈음, 일의 권태로움이 몰려올 때면 육아 휴직한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내가 일을 안 하고 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결혼했지만 출산은 하지 않은 동료들은 얼른 육아휴직 들어가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임신하기 6개월 전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래와 같다.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느긋하게 일어난다. 거실로 나가 잠을 깨우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사다 놓은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읽다만 소설책을 집어 들고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아침의 여유를 만끽한다. 아기는 푹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나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배가 고프면 파스타면을 삶고, 직접 키운 바질로 만든 페스토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사이사이 아기 기저귀도 갈고, 낮잠도 재운다. 오후 시간에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구경한다. 여유 있게 관람하고 근사한 카페에서 고소한 라테를 마시며 관람한 전시를 블로그에 기록한다. 아기는 유모차 안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육아에 대해 일도 몰랐던 나였다. 사실 육아의 현실은 이랬다.
아기 울음소리에 새벽에 서 너번은 깬 터라 피로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아기는 아침 6시부터 일어나 활동을 개시한다. 솜에 젖은 듯 묵직한 몸을 일으켜 아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고, 딸랑이를 흔들며 놀아주기 시작한다. 몇 분 놀았을까, 사정없이 울기 시작하면 만신창이가 된 손목과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안고 달래기 시작한다. 내려놓으려는 동작을 취하기만 해도 기똥차게 알고 다시 운다. 아기띠에 아기를 품어 안고 젖병을 씻고, 소독하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한쪽에 치우고, 손수건을 개고 하다 보면 아침 먹을 시간도 없다. 어느새 다시 아기 분유 먹일 시간이 다가오고 하루를 마치 6번 사는 기분으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가슴팍은 축축한 땀으로 흥건하고, 머리는 산발이고,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생기면 그 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육아휴직을 간절히 바랬던 나는 아기를 키운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서 복직을 바랐다. 출퇴근 길의 지옥철도, 팀장님의 잔소리도, 처리해야 할 업무도, 불필요한 회식도, 번거로운 동료와의 관계도 육아보다는 나아 보였다. 점심 식사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동료와 산책하며 나누던 실없는 수다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누가 나를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상상한 육아휴직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이런 현실을 말해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다. 사실 말해주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듣지 않았을 뿐이고, 들어도 내 일이 아니라 감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육아는 상상 속 지상낙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수시로 좌절했고, 우울했고, 또 힘들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정유미가 베란다에서 노을을 멍한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마치 그녀에게 빙의한 듯 동질감을 느꼈다. 아기 곁에서 매일매일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남들도 다 하는 육아인데,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내가 너무 나약한가. 나는 정말 엄마 될 자격이 없나. SNS 속 아기 엄마들은 즐거워 보였고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런가 싶어 자괴감에 빠졌다.
지난 1년 동안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별안간 눈물이 흘렀고, 가슴이 답답했다.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분명 아기 옆에 내가 앉아있는데, 나라는 사람이 투명인간처럼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주인공이던 삶은 끝이 나고, 아이라는 삶의 매니저가 된 듯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그럴 시간에 눈이라도 잠깐 붙이고, 앞으로 펼쳐질 육아 할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마음의 공허가 지속됐다.
그때 책을 읽었다. 먼저 육아를 경험한 선배들의 쓴 글을 읽으며 내가 마주한 현실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당연한 통과의례임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의 어지러움을 받아들이고 나자, 아이가 크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졌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커가는 아이의 성장이 경이롭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몇 달 후면 나는 복직을 할 것이고, 업무에 치이다 보면 분명 지난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툰 솜씨지만 소중하고 아팠던 순간들을 기록해두려 한다. 그립고 잊힐 때면 펼쳐볼 것이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려고 보니 이상하다. 분명 지치고 고단한 순간이 많았는데, 다시 보니 기쁘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슬픔 중 기쁨의 강도가 훨씬 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년 수고한 나와 남편, 그리고 고군분투하는 엄마와 함께 잘 성장하고 있는 내 딸 키키에게 소중한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