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분홍 의자에 대한 단상
아기 심장 소리를 확인한 후 병원에서 임신 확인증을 발급받았다. 공식적으로 임신한 여자가 되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임신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자궁 안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임신 확인증을 가지고 할 일이 많았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를 받아 가방에 잘 보이도록 달았다. 팀장님과 동료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았다. 평소 즐겨 신던 구두는 신발장 깊숙이 넣어두고, 걷기 편한 운동화를 꺼냈다. 배를 조이는 바지도 차곡차곡 접어 창고에 넣었다.
사람마다 임신 후 증상은 제각각인데, 나는 출퇴근 시간이 가장 고역이었다. 입덧이나 먹덧은 없었지만, 평소에도 저혈압과 빈혈이 있었던 터라 임신 후에는 아침 출근길이 더욱 고됐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지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사람들이 앞뒤로 밀고 눌러대는 통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집에서 회사까지 일곱 개 정류장만 지나면 되는데, 두세 번을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다. 삼십 분이면 가는 출근길이 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노약자석 쪽에 서 있는데 빈자리가 생겼다. 어지러움을 느꼈던 나는 임산부 배지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가방 위에 두고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한 분이 젊은 여자가 노약자석에 앉아있다며 호통을 쳤다. 억울하여 말문이 막혔다. 할머니 눈에는 조그마한 임산부 배지가 눈에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나오지 않은 배는 내가 임산부임을 드러내 주지 못했다. 속이 상했다. 화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저 임신했어요.”라며 배지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상황을 알겠는지 툴툴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또 하루는 너무 어지러워서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이전에 결코 해본 적 없는 행동이다. 번잡한 출근길이었고, 나는 10초 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빈혈 때문에 전찰 안에서 쓰러져 본 적이 있던 나는, 지금 당장 앉지 않으면 기절할 것 같은 그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아저씨는 당황하며 비켰고, 나는 다행히 쓰러지기 전에 앉아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저씨는 황당하다는 눈빛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임산부 배지는 만삭이 아닌 임신 초기 임부에게 정말 중요하다. 아직 아기가 자궁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여서 임신 중 유산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체형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사람들에게 배려받기 쉽지 않다. 가장 힘든 시기지만 가장 임산부 같지 않은 모습이라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임신을 하고 나니 거리에 많은 여성이 가방에 분홍 배지를 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보지 못한 모습이다. 나 역시 임신 전에는 분홍 배지를 눈 여기 보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임산부 좌석도 그렇다. 사람이 없을 때 ‘오면 비키면 되지. 굳이 비워둘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참 부끄럽다. 임산부가 이미 사람이 앉아있는 분홍 의자 앞으로 가서 배지를 보이면서 서있기란 어지간해선 쉽지 않다. ‘저기 좀 비키세요.’라고 압박을 주는 것 같아서 괜히 민망하기 때문이다.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분홍 좌석 쪽으로 가보지만, 비어있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하철 안내방송은 계속 임산부 좌석을 비워두라고 말하지만, 졸고 있는 아저씨, 통화 중인 아주머니, 게임하는 젊은이는 방송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홍 의자에 앉아 있다. 심지어 임산부 배지를 눈에 보이기 꺼내 두고 서 있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잘 없다.
물론 감사한 일도 많았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분홍 의자가 하나도 비어있지 않았다. 그냥 서서 가려고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내 가방을 끌어당기며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아주머니 옆자리는 바로 분홍 의자였고, 거기는 여고생이 앉아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아마도 자기 딸을 보는 듯해서, 혹은 임신했던 시절이 떠올라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 같다. 같은 여성이라도 아직 임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분홍 의자의 의미를 알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고단한 출근길을 피하고자 '모성보호 시간'을 신청하기로 했다. 제도적으로 하루 2시간 모성보호 시간을 쓸 수 있는데, 모든 직원이 신청하고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존재하는 제도를 떳떳하게 쓰고 싶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를 당당하게 쓰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는 운이 무척 좋았다. 다행히 근무하던 팀이 야근할 정도로 바쁘지 않았고, 내 업무가 명확했고, 팀장님이 이해를 해주셨고, 과장님도 눈치를 주지 않으셨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장점이 가장 컸겠지만, 그보다는 같이 일한 동료들이 눈치를 주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정말 복 받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더 일찍 육아휴직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팀 동료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모성보호 시간을 보장받으며 출산 3주 전까지 출근할 수 있었다. 모든 조직과 회사가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임신을 하고서야 존재만으로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다. 타인의 삶을 공감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나는 내 세상이 훨씬 넓어졌음을 느낀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과 상황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내가 약자일 때 받은 배려를 두 배, 세 배로 갚아가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