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태교 여행기 1
제주도로 태교 여행을 갔다. 주변에선 태교 여행이 둘만의 마지막 여행이 될 테니 최대한 멀리 외국으로 가라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귀차니즘으로 항공권을 예약하지 않아서 결국 무난한 제주도가 목적지가 되고 만 것이다.
5월의 제주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쨍한 하늘을 기대했는데, 우중충한 하늘이라니. 실망스러웠지만 태교 여행인데 마음을 좋게 먹자고 다짐했다. 제주도에 머무는 나흘 동안 맑은 하늘은 제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 하루뿐. 나머지는 우중 여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비 오는 날 특히 좋은 제주도 관광지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비자림.’ 평소 걷기를 즐기는 나는 특히 숲 속을 걷는 걸 좋아한다. 조용한 숲 속에서 흙을 밟으며 나무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 벌레 우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는 듣고 있으며,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비자림 역시 그런 곳이다. 비가 오면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더욱더 짙어지는 곳. 적게는 500살, 많게는 800살의 나이테를 가진 비자나무 수천 그루가 자라는 공간에 들어가 호흡할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비가 와서 다른 관광지가 마땅치 않았는지 우비를 입은 관광객이 입구에 많이 보였다. 우리도 옷을 단단히 여미고 우산을 쓰고 비자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새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새 울음소리와 빗소리를 배경으로 비자나무 아래를 걸으니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 안쪽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사랑 나무'라 불리는 이 비자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각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났지만 하나의 나무 같은 모습으로 얽히여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연리목을 보니 남편과 나, 그리고 배 속에 있는 아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서로 완전히 다른 토양에서 자라고 살아온 우리 두 사람이 어느덧 서로를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생명까지 잉태한 지금의 모습이, 푸릇한 잎사귀를 키워내는 연리목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키키도 연리목에서 자라는 싱그러운 잎사귀처럼 맑고 건강하게 태어나주길 기도했다. 우리는 비에 젖은 비자나무향을 오래도록 음미하며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