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태교 여행기 3
마지막 날 묵은 숙소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베개부터 거울 하나까지 너무도 내 마음에 들었다. ‘인디언 썸머’라는 이름의 숙소는 모든 것이 낮았다. 침대도 낮고, 소파도 낮고, 테이블도 낮고, 거울도 바닥에 낮게 놓여 있었다. 창문을 열고 나가면 베란다에 철제 의자가 놓여있고, 그 앞으로 정원이 펼쳐진다. 의자에 앉으면 낮은 감귤나무가 눈 앞에 보인다.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셨다.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정원을 어찌나 아름답게 꾸며놓았는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하나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다. 훔칠 수만 있다면 정말 훔치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아름다운 정원에 마음을 뺏겨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오른쪽 다리를 쓱 스치며 지나갔다. 집사를 알아보는 걸까. 조그마한 얼굴의 치즈 태비 한 마리가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너른 정원을 주인처럼 걸어갔다.
조도가 낮은 조명 아래,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 놓고 가져온 책을 펼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런 공간에서라면 매일 비가 와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처음으로 쨍한 하늘이 비췄다. 우리가 떠나는 날이란 걸 안 걸까. 마지막 날이라도 맑아진 제주의 깨끗한 하늘을 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주인장이 차려준 정갈한 아침을 먹고 다시 정원을 둘러봤다. 화창한 하늘 아래 정원은 어제보다도 반짝였다. 그때 어제 만난 갈색 고양이가 우리보다 먼저 정원 명당에 누워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우리만큼이나 해를 기다린 눈치다. 세상 느긋하고 편안한 자세로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고양이 꼬리가 자라다 만 것처럼 짧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나루의 꼬리에 비하면 그 길이가 1/4 정도였다. 꼬리가 왜 저런 걸까. 교통사고라도 당한 걸까. 한참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나왔다. 이 아이 꼬리가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어미가 새끼를 뱄을 때 잘 먹지 못해서, 영양이 부족해서 그래요. 영양이 부족해서 꼬리까지 영양이 가지 못해서 종종 이렇게 꼬리 짧은 새끼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길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주인장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내 배 위에 양손을 포개게 되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나는 임신 전과는 전혀 다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과 후 나의 가장 큰 소확행인 맥주 한 캔의 시원함을 포기했고,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로 잠을 깨는 습관도 버렸다. 매운 떡볶이와 싱싱한 회를 좋아하지만, 아기에게 혹여나 무리가 될까 하여 내내 자제했다. 근무 중 피로함을 달래려 카페인을 달고 살았는데 밍밍하고 맛없는 루이보스차를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열 달 후 꼬리 짧은 고양이가 내 몸에서 나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임신한 모든 여성이 품고 있을 걱정과 염려. 임신은 여성의 몸은 물론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꾼다. 만에 하나 나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음식이나 행동이 배 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까 싶어 늘 노심초사다. 그러니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이 제일 중요했던 내가 어느새 배 속의 아기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했다. 꼬리 짧은 고양이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그 고양이를 배고 먹이를 찾아 돌아다녔을 어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여 새끼를 낳으려고 했을 어미 고양이. 그럼에도 꼬리가 짧게 나와 버린 새끼 고양이.
인터넷을 찾아보니 애초에 유전적으로 꼬리가 짧은 고양이가 있다고 한다. 모든 꼬리 짧은 고양이가 배곯은 어미 고양이에게서 태어난 것은 아니란 사실이 위안이 되면서도 후에 동네를 산책할 때면 늘 고양이의 꼬리를 살피게 되었다. 그럼에도 너를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썼을 어미 고양이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주기를,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