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보다 이른 출산 직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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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 눈이 떠졌다. 이틀 전 아침 속옷에 갈색 냉이 비쳤고, 그날 오후 약간의 출혈도 있었다. 이것이 이슬에 피가 비친다는 것일까. 출산이 임박했다는 몸의 신호가 깊은 잠을 방해했다. 예정일이 20일이나 남은 시점이었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든든히 챙겨 먹고 평소처럼 중랑천 산책로를 한 시간 반가량 걸었다. 걷는 내내 소변이 마려운 기분이 들었고, 아랫부분이 묵직하게 아파서 3번 정도 벤치에 앉았다 쉬기를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속옷을 입는데 갑자기 갈색 물이 쏟아졌다. 전날 아기 옷을 세탁하고 , 출산 가방을 싸느라 무리를 해서 그런 걸까.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배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살짝만 건드려도 펑하고 터질 것만 같다. 짙은 갈색의 선명한 임신선과 화가 난 듯 붉은 튼 살이 임신의 훈장처럼 배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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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일이 한참 남았지만, 몸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했다. 마무리 출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미처 빨지 못한 아기 띠와 겉싸개를 세탁하고, 조리원에서 쓸 손목 보호대와 수면 양말을 주문했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 동안 틈틈이 읽을 김애란의 신간 에세이도 주문했다. 이것저것 리스트를 지워가며 출산 준비를 하다 보니 옛날에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낳고 키웠을까 궁금해진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고, 로켓 배송도 없어서 만삭의 몸으로 물건을 직접 사러 가야 했을 텐데. 다정한 남편을 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어린 나이에 나를 가지고 참 고생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괜히 슬퍼졌다.
D-1
동네 주민센터에서 하는 산모 요가에 참석했다. 직장 다니느라 주로 평일 오전에 진행하는 주민센터 프로그램은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하다가 다른 산모와 함께 운동하려니 설렜다. 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산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모가 많다는 사실을 임신 전에는 몰랐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삶이 참 많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강사의 동작을 천천히 따라 하다 보니 50분이 금방 흘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배가 조금 아팠다. 횡당보도에 초록 불이 들어왔지만 건너지 못했다. 발뒤꿈치가 갑자기 너무 아프다.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로 발바닥 신경이 곤두섰다. 가만히 몸의 느낌을 감지하고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집으로 가서 누웠다.
D-day
9시를 향해 가는 밤, 진통인가 싶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15분 간격으로 처음 느껴보는 기분. 점점 그 느낌의 간격이 좁아지더니 밤 12시가 넘어가자 10분 간격으로 통증이 온다. 아직 뚜렷한 진통이라 하기에는 약하다. 하지만 계속 느껴진다. 5-15분 간격으로 배가 수축하는 느낌이다. 새벽 2시 샤워를 한 후, 진통 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얼른 앱을 다운로드하여 진통을 기록한다. 5분 간격으로 배가 뒤틀리는 기분이다. 너무 아파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 일찍 가도 자궁이 열리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는 글을 읽었다. 정말 정말 못 참을 때까지 기다리자 다짐하며, 입에 수건을 물고 통증을 견딘다.
아, 출산 임박인가 보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배 속은 누가 걸레를 쥐어짜듯 뒤틀린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5분 정도 잠이 들었을까. 다시 통증. 몸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며 소파에 누웠다가, 의자에 앉았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조금이라도 통증이 얕아지는 자세를 잡아본다. 아침 해가 밝고 6시가 되어 남편을 소리 질러 부른다. “오빠! 애 나올 거 같아. 병원, 병원!” 남편은 어리바리 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세수하고, 나를 차에 태워 10분 거리의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8시간 더 고통을 견딘 후, 사랑스러운 키키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