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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15. 2020

나의 엄마

엄마가 되어 엄마를 생각하다.

조리원에서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집에 와서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자니 불쑥 키키의 외할머니자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22살 꽃 다운 나이에 나를 가지고, 23살에 나를 낳은 울 엄마. 도대체 어떻게 23살 아가씨가 아기를 낳아서 키울 수가 있었을까, 새삼 엄마의 삶이 놀랍고 애처로웠다. 내 22살, 23살을 돌아보면 나도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간인데, 엄마는 당시에 갓난아기를 키워냈다니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부족한 것 없이 키키를 세상에서 맞이하고 나니, 많은 것이 부족했던 내 가난한 아기 시절이 떠올라 심장 곁이 뻐근해졌다. 호르몬의 장난일까. 아기를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평온하게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키키 곁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이상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고, 자신도 어렸던 그 젊은 나이에, 그 가난 속에서 어떻게 나를 낳고 키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산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산부인과가 조산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산부인과가 체계적으로 산모의 임신 시기에 초음파도 보고, 진료를 본다면 조산소는 아기를 받아주는 곳이었다. 키키를 가지고 주기적으로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받아오면, 가족에게 메신저로 사진을 공유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경이롭게 사진을 보고 감상을 남겼다. 엄마는 나를 가지고 한 번도 초음파를 찍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니, 나를 가지고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시절엔 다 그랬나 보다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가 남편을 가지고 초음파를 보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엄마가 떠올라 마음이 참 슬펐다.


엄마는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데, 돈이 없어서 이웃에게 급히 돈을 빌려 조산소에 가서 몸을 풀었다고 한다. 조리원은커녕 갓 낳은 나를 안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엄마는 내 물음에 이제는 추억이라 불러도 될 지난 시절을 즐거이 회상했지만, 나는 전화를 끓고 한참을 울었다.


아기 낳을 돈도 없는 가난함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까지 해서 나를 왜 낳았을까. 철없던 시절, 그 가난 속에서 나를 세상에 내놓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좀 더 자신의 삶을 멋지게 꾸려 나가지, 왜 그 어린 나이에 나를 가지고 나아서 그렇게 빨리 엄마가 되어 버렸는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은 나 때문에 쫓겨날 뻔했다고 한다. 하도 울어서 이웃집, 주인집 할 것 없이 눈치를 줬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집에서 옆 집 대화 소리도 들였을 텐데, 밤낮없이 울어대는 내 울음소리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오직 엄마 품에서만 울지 않아서, 엄마는 24시간 나를 엎고, 안고, 들고 지냈다. 화장실 갈 때는 물론 밥 할 때도 잘 때도 늘 나를 안고 있었다. 예민한 아빠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늦은 밤 밖에서 나를 엎고 졸린 눈을 비볐을 가로등 아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시절의 엄마와 나를 아는 지인들과 친척들은 나를 볼 때면 그 울보가 이렇게 컸냐며 놀라워하시곤, ‘엄마에게 꼭 효도해야 한다. 엄마가 너 때문에 정말 고생했다.’고 꼭 덧붙인다. 당시에는 엄마의 힘듦이 어떤 것인지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아기니까 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기였던 나에게 너무 막말하시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우리 엄마의 그 시절의 떠올려보니 나를 두고 도망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키워낸 엄마가 참으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엄마는 그 시절 힘들기는 했어도 나를 낳고 키운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키키를 낳고 손목도 허리도 너무 아프고, 잠을 자지 못해 정신이 몽롱하여 나쁜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내가 너무 진지한 고민 없이 아기를 가지고, 낳은 게 아닌가, 나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도 자격도 되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젖을 물리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키키 엄마여서,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한 사람이 무리 없이 성인으로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가, 결코 출산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돈의 많고 적음이 아이의 성장에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부모와 보육자의 사랑으로 아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란다. 그 사랑은 결코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고귀한 것이다.


산후 호르몬의 장난 때문인지 출산 후 20여 일은 참으로 위태로웠다. 신체와 정신이 내 것이 아닌 듯 제멋대로 굴었다. 열 달을 품은 아기를 품에 안고 행복한 기분보다는 두려움과 공포심이 들었다. 앞으로 엄마로서 살아갈 날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럴 때면 나는 23살 우리 엄마가 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 엄마가 그 시절 나를 키워냈든, 나 역시도 할 수 있다고. 힘들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또 상상한다. 키키가 내 나이가 되어서 엄마를 떠올릴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지, 어떠했으면 좋겠는지. 그러면 다시금 힘을 내보자고, 단전에서 작은 힘이 올라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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