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rabbit Oct 15. 2020

육아, 나를 알아가는 과정

산후 도우미와 보낸 열흘이 알려준 것

산부인과에 갈 때는 분명 여름이었는데 조리원에서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니 가을이 되었다. 푸릇푸릇했던 나뭇잎은 어느새 노란색, 갈색,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반팔 원피스 밖으로 나온 맨살에 닿는 바람이 차가웠다.


하얀색 보자기에 돌돌 말린 아기를 출산 전에 미리 꾸며놓은 아기침대 위에 살포시 눕혔다. 아기를 기다리며 이불을 빨고, 손수건을 개고, 젖병을 세척해놓았던 게 불과 2주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사이 우리 집의 풍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과 둘이 살던 깨끗하고 단정하던 신혼집은 곳곳에 아기용품이 자리 잡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유모차가 기다렸다. 누구 봐도 아기 키우는 집이었다.


열흘 동안 국가와 구에서 지원하는 산후도우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 멀리 살고, 남편도 휴가 없이 바로 출근해야 하는 형편이라,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산후도우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에 머물며 산모의 식사를 챙겨주고, 아기를 돌봐주신다. 워낙 개인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나이기에 낯선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서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어떨지 걱정이 됐다.


첫날, 집으로 들어온 산후도우미에게 인사를 하고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이모님은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이것저것 꺼내서 아침을 차려주셨다. 순식간에 식사를 차려주시는 것도 놀라웠지만 냉장고와 서랍을 스스럼없이 열고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시시콜콜하게 물어보지 않고 선생님 알아서 해주셔서 피로하고 힘이 없던 나로서는 감사했다. 주말 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나는 없는 재료로 뚝딱뚝딱 반찬을 만들어 내어주는 이모님 덕분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밤새 아기를 보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했던 나를 대신해 아기를 돌봐주어 낮잠도 잘 수 있었다. 


좋았던 시간도 잠시, 나흘 째가 되자 좋았던 점은 그새 익숙해지고 미묘하게 불편한 상황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유수유를 하고자 했던 나는 어떻게든 키키에게 젖을 물리려고 이모님께 아기가 울거나 깨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모님은 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분유를 먹였고, 젖을 먹이러 방에서 나온 나는 당황했다.


조리원에서 나올 때 아기에게 기저귀 발진이 심하게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배꼽에 탯줄이 떨어지지 않고 고름이 차올라있었다. 유두종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찝찝하게 조리원을 나왔고, 주말 내내 배꼽 고름을 보며 화가 났다. 다른 아기들은 말끔하게 잘 떨어져서 배꼽이 보이는데, 키키는 피와 고름이 배꼽 안을 채우고 있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이모님과 병원으로 향했다. 연고를 처방받고, 유두종도 치료했다. 아직 태어난 지 20일도 안된 아기지만 발진이 심해 연고를 발라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얇게 펴 바르라고 했고, 이모님과 같이 처방을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오후에 아기 엉덩이에 연고가 두껍게 발린 것을 확인했고, 기저귀를 최대한 채우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과는 달리 이모님은 꿋꿋하게 기저귀를 채우셨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의견을 말해도 이모님은 자신의 경력을 말하며 은근히 내 말을 깔보고 무시했다. 엄마 나이 또래인 이모님에게 강하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10일 동안 나와 아기를 돌봐주며 같이 지내야 하는 분인데 괜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 싫어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매일 돌리는 세탁기와 건조기도 신경 쓰였다. 빨래 거리가 다섯 개도 되지 않는데 돌리기 일쑤였고, 하루에 두 번을 돌리기도 했다. 평소 일주일에 두 번, 몰아서 세탁기를 돌리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냉장고 안 반찬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잔소리를 하고 요구가 늘어났다. 식사 시간마저 불편했다. 내 입맛이 아닌 반찬들에 대해 ‘저는 이런 거 안 좋아한다’고 은근히 티를 내도,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먹는 내내 자기 얘기를 하는 것도 점차 듣기 힘들어졌다.


돌이켜보면 저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고, 겨우 열흘 같이 지내는 데 조금 참으면 될 것을 뭐 그리 예민하게 느끼느냐 싶기도 하지만, 산후에 내 상태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밤새 아기 울음에 수시로 깨서 젖을 먹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로가 극에 달했다. 입맛이 없어도 모유수유 때문에 뭐라도 꾸역꾸역 먹어야 했고, 긴 밤을 위해 졸리지 않아도 낮잠을 자야 했다. 호르몬 역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인가. 이모님과 보내는 시간의 불편함이 나날이 더해갔다. 그냥 5일만 계시라고 할까, 마음에 온갖 잡념과 갈등이 일었다. 쉬고 싶은 나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도, 아기가 누워있는데 버젓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움받자고 한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내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그렇게 끙끙 앓다 보니 어느새 10일 지났다. 소속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이모님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모든 것에 매우 만족으로 대답했다. 


이모님이 떠나고 내가 할 일은 늘어났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했다. 내 속도에 맞게, 내 마음에 들게 나와 아기의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할 일은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행동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내가 아기에게 하고 싶은 방식을 부탁하지 않고 하면 되니까 좋았다. 이렇게 나는 혼자 하는 육아가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과 보낸 시간을 통해 배웠다. 













이전 12화 분홍 초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