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그리고 친숙함
자카르타에 온 후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단연 한식이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세계 어디든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현지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재미였고,
굳이 한식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식당은 비싸기만 하고 맛도 애매해서 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자카르타에 와서는 매일 점심을 한식으로 먹고 저녁도 한식을 먹는다.
점심의 경우 회사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한식당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순간 취향이 바뀐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싶기도 하고,
왜 어르신들이 해외에 나가면 한식을 찾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현지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인구빨로 밀어붙인 감은 있겠지만,
CNN이 페이스북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 2위가 인도네시아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요리는 향신료 향과 맛이 강해서 매일 즐기기엔 쉽지 않다.
나시고렝, 미고렝 정도는 괜찮은데 그것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게다가 대부분의 요리가 튀기거나 볶은 음식인지라 생각보다 느끼하다.
사테와 같은 길거리 음식은 아예 손도 못 댄다.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 즐비한데, 한 입만 먹어도 바로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식사를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식당이나 몰에 가야 하는데,
그럼 선택지가 인도네시아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일식, 중식, 양식, 심지어 멕시칸까지 다 있고 가격대도 비슷하게 올라간다.
여러 메뉴를 두고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냥 한식 먹을까"로 귀결된다.
결정타는 술이다.
퇴근하고 반주 한잔하고 싶은데,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다 보니 주류를 파는 식당이 많지 않다.
현지 식당은 십중팔구 술이 없고, 있어도 맥주 한두 종류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 파는 식당, 그러니까 한식당을 찾게 되고, 한식이 주식이 되어버렸다.
부임 전만 해도 현지 음식 실컷 먹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 내 휴대폰 지도엔 한식당 북마크가 가득하다.
아마 여기서 몇 년 더 있으면 자카르타 한식당 맛집 지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