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탐방을 하다 잎을 다 떨궈낸 북미사시나무를 만났다. 누군가의 앞마당에 심긴 세 그루의 사시나무가 은빛 수피를 뽐내고 있었다. 너무 반갑고 또 멋있어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이 나무를 대하는 지금 나의 운명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내가 자란 동네는 남한산성도립공원이 병풍처럼 둘러싸 안은 언덕과 경사진 길이 누가 더 경사졌는가를 다투는 곳이다. 집에서 언덕을 내려가 다시 학교의 언덕을 올라가는 생활이 매일 이어지던 시절이었기에. 물론 대부분의 학교가 산을 깎아 만든 자리에 있다 보니 꽤나 길었던 학창 시절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배가 고팠고 대신에 잔병치레가 없었다. 불만보다는 언덕을 다 올랐을 때의 희열이나 성취감이 마음속에 더 큰 자리를 차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동네를 떠나 평지에 가면 내내 마음속 어딘가가 허전했다.
오스틴은 hill county라 불린다. 텍사스의 도시가 대개 평지에 있지만 오스틴은 언덕이 많다. 하지만 오스틴의 언덕은 내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텍사스의 태양과 열기와 습기는 언덕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달리는 자들이 있지만 그저 오스틴은 그들의 세상일 뿐 나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2023년이 가기 전에 큰 결심을 해서 텍사스 서쪽으로 달린 후 다시 북쪽으로 달려 서서히 해발을 높여 5150피트 (1569미터) 와이오밍주 캐스퍼에 닿았다.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 노고단보다 높은 고도다. 밤에 자다가 목이 급작스럽게 메마른 느낌이 들거나, 화분에 파와 부추를 심느라 쭈그리고 앉아 있다 허리를 펴고 서는 순간 어지럽다거나, 코를 풀면 콧물에 피가 조금 섞여 나오는 등의 일상적인 고산증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는 해도 추위와 바람과 고도에 무난히 적응하는 중이다.
와이오밍주 면허가 아직 나오지 않아 클리닉에서 쉐도잉과 운영지침 등을 배우는 중이라 아직까지는 낮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고 있어 오늘 오후에는 동네 탐방에 나섰다. 몇 블록 근처에 백 년이 넘은 고급식료품점이 있다고 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정말 주택가 한가운데 식료품점이 나타났는데 2018년에 백 년 분기점을 찍어 이제는 105살이 된 가게다. 워싱턴, 버지니아에서 온 굴도 있고, 스콘도 만들어 판다. 좋은 상품들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지만 가격이 꽤 높았다. 이 동네 주민들의 지갑이 이렇게 쉽게 열린단 말인가?
길을 더 돌면서 동네를 구경하며 집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대개 1950년대 전후로 지어진 주택들이 각기 다른 모습과 색감을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한 집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면면이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언덕길을 찾아 오르는데 최근에 개조를 한 듯한 멋진 집이 보여 감탄을 할 뻔했지만 현관 앞에 트럼프 2024 깃발이 꽂힌 걸 보고는 감탄을 삼켰다. 월마트에서 나를 보고 엄마가 끄는 쇼핑카트에 앉혀 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내 귀에는 뻔히 들리지만 본인은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말소리로 갑자기 자기 엄마한테 뭔가를 속삭이듯 질문을 하는 게 아무래도 아시아인을 본 적이 없는 아이인가 싶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그런 질문을 큰 목소리로 하지 말라며 나무라는 투로 말하는데 그게 다 들린다.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곳이니 다양한 인종을 보기 어려운 점도 있겠다 싶지만 인터넷으로 무한하게 다른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지금 세상에 새로운 인종의 출현으로 놀라는 아이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미국 중소도시의 문화적 괴리와 인종적 괴리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게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캐스퍼 산에서 남한산성을 떠올린다.
언덕배기에서 우리 동네를 떠올린다.
강원도 깊은 숲에 가야 만날 수 있었던 사시나무를 가로수로 쉬이 만난다.
노고단의 쨍하게 찬 새벽 공기를 매일 아침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뭐랄까 내게는 득이 더 많은 그래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를 괴리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그런 생활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감이 큰 그런 곳이다. 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