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잡자.

그런데 어떻게. 무엇을. 잡아야 하는 걸까

by 마루금

날 것의 글이 되겠다.


인턴십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환자를 만나기 전날 미친 듯이 떨렸었다. 순수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는 환자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거나, 내가 모르는 질병이거나,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면 어쩌나.. 해야 하는 그 많은 질문들을 제 시간 내에 어떻게 다 묻고 환자의 답변을 듣고 제깍제깍 맞는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혈자리는 어떻게 찾을 것 인가, 어떻게 아프지 않게 침을 놓을 수 있을까? 무슨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제기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동시에 빨리 이 일이 습관이 되어 환자를 즐겁게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다시 쿵쾅되는 심장을 부여안고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쇠맛이 났었다.


그러나 때는 코로나가 아직 한창이었던 2021년 1월 초였고, 안 그래도 없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질 않는데 오스틴에 한파까지 찾아와 환자들을 집에 꽁꽁 묶어두었다. 그렇게 떨리던 마음은 가라앉았고 환자 없는 인턴십이 한 달째 이어졌다. 교실에 들어서면 맥락없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억이 희미해진 자침기법을 배우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긴장감은 와해되었다.


그렇게 5주가 지난 또 어느 추운 날. 여느 때와 같이 교실에 맨 먼저 도착해 치료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다. 곧이어 세 명의 시프트 친구들 중 한 명이 도착해 잡담을 나누는데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환자가 있다! 차트를 흔들며 누가 치료할래? 신나서 물으신다. 둘 다 눈이 동그래진 친구와 나는 긴장감이 급격히 치솟는 걸 느꼈고 눈치챈 교수님은 오늘 일등으로 도착한 사람이 치료하자!고 정하셨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고, 나는 긴장이고 뭐고 감정을 담기 전에 환자 정보를 머리에 담느라 눈알이 빠지게 차트를 훑었다.


추운 날씨에 고질적인 천식이 더 심해져 우리를 찾았던 나의 첫 환자. 나와 동갑이었는데 태어나 처음 침을 맞으러 왔는데, 운이 없게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내 사지 말고는 제대로 놔 본 적이 몇 번 없는 나한테 침을 맞았다. 특히 SI3. 나에게 공포를 주었던 혈자리 SI3. 그 자리에 아프지 않게 자침하는 방법을 몰랐던 때라 그냥 침을 꽂으려 하니 환자는 소리를 내뱉지 않으려고 참는 것 같았지만 아아악 끙. 소리가 새어나왔다. 놀란 나는 침통을 통째로 떨어트리고 흩어진 침을 줍고,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시는 교수님 대응하고 환자에게 사과하느라 그 추운 날 땀을 꽤나 많이 흘렸다. 치료실에 들어올 때의 상태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는 상태로 환자는 거친 바람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저 나의 기니피그가 되어주었던 나의 불쌍한 첫 환자. 그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부단히 공부하고 자침을 연습해야 함을 일깨우게 된다.


내일 환자들을 만난다.

다행히 와이오밍 면허 문제를 해결되었지만 그 고민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다른 마음의 부담들이 순식간에 차지했다. 대체 왜 떨리는지. 면허 따고 만나는 첫 판부터 운명을 같이 하게 되는 환자들 말이다. 선배 침구사가 있지만, 그래서 케이스를 논의해 볼 수는 있지만 모든 결정과 치료와 책임은 내가 진다, 내 환자에 대해서는. 그게 마음의 부담인 건가? 왜 부담스러운 걸까?


입이 또 마른다. 심장과 위에서 열이 오르는지 진득하고 반갑지 않은 맛이 입안에 겉돈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게 친절한 환자를 만나든 화를 내는 환자를 만나든, 내가 잘 아는 증상이든 아니든, 치료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한 중심. 그런데 무엇으로 어떻게 잡지?

어서 이 일이 일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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