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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Jan 28. 2023

바 선생님께 바치는 마이바흐

아늑하고 좋네요. 여기로 계약할게요!"
(It's cozy here. I'll take this one!")


2011년 봄. 이사를 하고 며칠 동안은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2010년 여름에 미국에 도착해 같이 살게 된 미국인 룸메이트와 더 이상 같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제일 좋았습니다. 자취방을 옮기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가 룸메이트였거든요. 그래도 처음 몇 달은 그 친구와 사이가 괜찮았습니다. 마트에 장도 같이 보러 가고 밥도 같이 해 먹곤 했죠. 렌트도 둘이 반반씩(1인당 $330 정도) 나눠서 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첫 학기였습니다. 그런데 룸메이트가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룸메이트의 여자친구가 집으로 와서 같이 지내는 날이 많아진 겁니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내가 있는 걸 알면서 거실에서 해피타임을?' 화장실이 한 개였는데 거실을 점령당해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하는 날도 몇 번 있었죠.  그 친구의 예의 없음에 구시렁거리며 제 방에서 갇혀 지내는 날들이 제법 생겨났습니다. 예전에 봤던 미국 시트콤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뭐였더라...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동물의 왕국에 더 가까울 것 같네요.

어쨌든, 이듬해 봄 자유를 찾아 이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예산 내에서 몇 군데 알아보던 중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고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을 발견했고,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이 왔더랬죠.


#바 선생님 안녕하세요

책상은 전에 살던 사람이 놓고 간 것을 그대로 썼고,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다른 유학생에게서 공짜로 물려받은 침대 매트리스 하나와 그릇 몇 개, 그리고 월마트에서 산 책상 의자가 전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리 결혼하면 살림을 장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도 그땐 뭐가 없어도 너무 없긴 했습니다. 아참! 제일 중요한 클래식 기타. 유학 나올 때 큰맘 먹고 동아리 선배 통해서 샀던 30만 원짜리 입문용 클래식기타도 있었네요. 유일한 가구인 책상을 어디에 놓을까 둘러봤더니 굴뚝 기둥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벽 중간 즈음 만들어진 모서리 부분에 넓은 평상 스타일의 책상을 놓았습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며칠이 기분 좋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논문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를 간지럽히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슥, 스슥, 슥, 슥슥, 사사삭.


얼핏 들었을 때는 오토매틱 손목시계에 귀를 갖다 대면 들리는 그런 소리였어요. 그렇지만 매우 불규칙적이면서도 강박적인, 뭔가가 서로 뒤엉켜 부딪히며 나는 신경질적인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벽 돌출 부분에 귀를 갖다 댔습니다. 눈은 지그시 감은채로요. 오감을 집중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존재를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처음엔 쥐나 박쥐가 떠올랐지만, 뭔가 그들의 동작과 소리가 매치되지 않았습니다. 며칠간 시간대를 달리 해서 계속 들어보니, 소리가 꽤 여러 군데에서 속삭이듯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아주 작은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소리라는 생각이 강해졌지요.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 드디어 한 생명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 그랬군요. 바 선생님이셨군요!'


깨달음을 얻은 순간,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습니다(이건 극적 효과를 위한 묘사로 이해해 주세요. 10년도 더 된 일이라 솔직히 동공 확장까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때 느낌을 표현하자면, '털썩' 혹은 '철렁' 정도였네요). 왼쪽 귀는 그대로 벽에 갖다 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떴습니다. 네, 학창 시절 봤던 영화 <조의 아파트, Joe's Apartment> 실사판을 제가 찍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바퀴벌레로 뒤덮인 조의 아파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당장 뭘 해야 할지 알겠더군요. 그날 바로 월마트에 가서 각종 바퀴벌레 약을 사 왔습니다. 바 선생님을 원치 않는다는 강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그 아파트에서 바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 소리만으로 바 선생님인 것과 그 가족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용케도 정체를 빨리 알아챘네요. 환영의 마음을 담아 약을 열심히 설치하고 뿌려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학교에 다녀온 후, 벽면을 따라서 유명을 달리하신 바 선생님들이 줄을 지어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벽 속에 있는 바 선생님들은 여전히 제 귀에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슥, 스슥, 슥슥 (낮은 자의 마음으로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던 자네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어차피 자네의 선택인데, 날 거부할 수 없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 수의 성체 바 선생님을 목격했다면 숨어있는 개체수는 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는 것을요. 본능에 충실한 룸메이트를 피하려다 생존본능 그 자체인 바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오롯이 제 선택의 결과였기 때문에 인지부조화를 크게 경험했습니다. 바 선생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긍정! 감사하자!'를 외치며. 당시에는 그 긴긴 싸움이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렌탈 오피스에 몇 번 얘기를 했더니 중간중간 소독을 해주어 아침 저녁으로 치워야 하는 바 선생님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협지에 보면 고수들은 늘 호신강기를 사용하죠. 저도 얼떨결에 호신강기를 펼쳤습니다. 잠결에 얼굴 감각이 이상해 뺨을 쳤더니 볼을 타고 흐르는 기분 나쁜 액체가 느껴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좋지 않다!’

불을 켜보니 엄지손가락 만한 바 선생님께서 부들부들 최후의 경련을 일으키고 계셨습니다. 그날 아침, 바 선생님을 그대로 베개와 함께 봉지에 모시고 렌탈 오피스로 찾아갔습니다. 아주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죠.


사장님 자식한테 이런 데 살라고 할 수 있으시겠어요? 얘(바 선생님)랑 같이 한 침대에서 자구요?
Would you let your children live in this condition? Sharing a bed with this one?



#바 선생님 감사합니다

렌탈 오피스에 시원하게 할 말을 다 하고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청운의 꿈을 안고 온 머나먼 타지에서 이 끝도 없는 바퀴벌레들을 상대하고 있는 제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예전 룸메이트에 만족하지 못하고 환경 탓을 했는데 정작 바뀐 환경에서 또 다른 문제로 마음이 흐트러져 있는 제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하려 노력해 왔는데, 막상 여유가 없어지니 불평을 하고 있는 건 오히려 제 자신임을 발견하고는 겸손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주 쓰는 미국 표현 중에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용기를 잃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성장과 성공의 기회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나중에 깨달았죠. '눈치 없었던 건 룸메이트가 아니라 나였을 수 있겠구나'하고 말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학생이 돈은 없고, 만나고는 싶어서 집에서 데이트를 한 건데 눈치 없는 동양인 유학생이 신경 쓰이게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그 커플의 마음이 어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저의 부족함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 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얼마나 훌륭한 배움의 자세인가? 바퀴벌레까지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이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라는 저에 대한 감탄과 존경의 물결(나쁜 생각)이 저를 잠시 감싸기도 했습니다. 유학생들이 언어 문제도 있고 사회적 소속감도 약해져 여러 가지로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의식적인 자기 가치 확인 과정이 매우 도움이 된답니다. 어쨌든! 마지막 렌탈 오피스 방문이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전문 업체가 와서 박멸 작업을 해주었고 비로소 바 선생님은 큰 가르침을 주시고 사라지셨습니다.


#바 선생님께 바칩니다, 바흐의 BWV 1000 Fuga

결혼 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한 바 선생님과의 추억에는 클래식기타도 빠질 수 없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때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했던 클래식기타는 지금까지도 함께 하는 아주 오랜 벗입니다. 바 선생님이 끊임없이 소리를 낸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수업 듣고 실험을 한 뒤 저녁 즈음에 집에 돌아오면 그 적막함 속에 가끔씩 바 선생님이 속삭였지요. 그럴 때마다 기타를 연주했습니다. 바 선생님은 속삭였고, 저는 클래식기타의 따뜻한 선율을 베풀었습니다. 그 이질적인 소리가 어우러져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유학생인 저에게 없는 것은 돈이었고 가장 많은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연애 이야기를 따로 하겠지만, 여자친구(지금은 아내)와 페이스타임 하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은 논문을 읽고 기타를 쳤습니다.

현실은 바퀴벌레였지만 제 이상은 바흐에 닿아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사 후에 문득 대학 동아리 선배가 멋지게 연주하던 Bach의 BWV 1000 Fuga 곡을 저도 꼭 한 번 연주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제게는 많이 어려운 곡이라 시도조차 못하고 악보만 가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바 선생님을 만나고 난 그때쯤이 첫 학기를 마치고 두 번째 학기 중이라 어느 정도 학교 생활과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었을 때이기도 했고, 바 선생님으로 상징되는 유학생활의 여러 레몬들을 레모네이드로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제 성격상 정리되지 못하고 늘 헝클어져 있는 머릿속을 각 맞추어 정리해 줍니다. 그래서 제 성격과 반대되지만 바흐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왠지 그 굴뚝 기둥 안에 질서 없이 빼곡히 차 있을 바 선생님들이 바흐 곡의 음표 하나하나를 연주할 때마다 열과 오를 맞추어 정렬이 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바 선생님 덕분에 바흐의 BWV 1000 Fuga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바흐의 선율에 바 선생님들이 정렬되었(다고 믿고 싶)으니, 당시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바흐를 위한 바퀴벌레였던 동시에 바퀴벌레를 위한 바흐였습니다. 얼추 곡 전체 음을 낼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나서는 매일 성경을 읽은 뒤 Fuga 연주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경건한 작업이 끝나고 나면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완주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정작 바 선생님은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다행히 연습 동영상을 올려놓았던 적이 있네요. 밑의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맞은편에 저렇게 나무 소재로 된 굴뚝기둥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바 선생님께 그 위대한 생존 능력과 겸손함과 귀한 가르침에 경의를 표하며 이 곡을 바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PIwSq9a5q8&list=RDMPIwSq9a5q8&start_radio=1

<바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my Bach, BWV 1000 Fuga>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 시기가 정말 힘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이던가요. 행복했고, 따스했고, 감사했고, 내일이 오는 것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든 날들도 많았지만, 10년 간의 미국 생활에서 수월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바 선생님은 미국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welcome drink 같은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죠. 그럼 한국에서의 최근 2년은 수월했느냐? 그럴 리가요. 인생에는 크든 작든 바 선생님과 같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 그런 것들이 늘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요. 그렇지만 그곳에는 배움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 선생님이 턱 밑까지 들어 찬 와중에도 숨 쉴 구멍이 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반드시 있습니다. '마이 바흐'처럼요. 여러분의 바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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