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학기가 끝난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방학기간에 맞춰 결혼을 하려다 보니 날 좋은 7월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입국 다음 날부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있던 여자친구가 미리 대부분의 준비를 해두었고 제가 같이 해야 하는 부분들도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 2주 간 강제 귀국 다이어트를 했어요.
시차적응이 다 되었을 무렵, 드디어 결혼식 날이 밝았습니다.
비가 올 수 있다던 예보와 달리 다행히 날씨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비 대신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 더더욱 좋았고요(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문이 열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입니다.
장인어른을 꼭 안아드리고 신부의 손을 잡았습니다.
주례를 듣는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점점 눈이 풀리고 식은땀이 나는 듯했습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유학생들 중 몇몇이 무리한 스케줄로 한국에 들어와 결혼식을 하다가 주례 도중에 쓰러졌다는 웃픈 얘길 들은 터라 정신을 더 바짝 차렸습니다.
주례가 끝나고 드디어 축가 시간.
"결혼식 때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 불러주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
"그래, 그걸로 불러줄게!"
"반주는 MR로 하는 거 어때?"
"MR? 에이, 그래도 기타로 가야지."
한국에 들어오기 전 여자친구의 주문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 고음의 노래라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습을 했었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당연히 온갖 오글거리는 멘트들을 써봤습니다.
그리곤 상상의 나래를 잠시 펼쳤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여자친구의 화장 번진 얼굴을...
(훠이훠이!)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했던가요.
계획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갔던 프로포즈 때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군더더기 없이 노래만 부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첫 번째 축가로 전문 성악가들의 멋진 4중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뒤이어 제 차례가 되었죠.
준비된 의자에 앉아 기타를 잡았습니다.
조명이 비치니 하객들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외운 기타 코드가 생각이 안 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기어들어가는 염소 목소리로 쭈뼛쭈뼛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언젠가아~ 그대에게 준~"
오랫동안 쳐왔던 기타였지만 긴장된 상태로 새로 익힌 곡을 하려니 여러모로 어색했습니다.
예식장 직원이 신랑의 소리가 너무 작다는 걸 눈치채고는 마이크를 바짝 갖다 대줍니다.
'하... 부담스럽게 센스 있으신 분이네'
어찌어찌 끝까지 부르는 것은 성공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사회를 봐준 친구가 식장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었죠.
"내가 결혼식에서 신랑이 직접 기타 부르면서 축가 부르는 거 성공한 걸 못 본것 같아."
나중에 장모님께서 그날 결혼식에 대한 짧고 정확한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결혼식 분위기며 꽃이며 폐백까지 전부 다 좋았어. 축가만 빼고."
다음 결혼식 때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제 딸 결혼식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