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ickle in the universe
A tickle in the universe. 우주가 간질간질하다니... 무슨 뜻일까요?
통계 수업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주며 자신 있게 썼던 표현입니다.
통계는 한국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지만 미국의 심리학 전공생들에게는 특히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1순위 과목이지요. 매 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나면 학생들 출석률이 눈에 띄게 낮아집니다. 채점한 시험지를 받아 들고 울거나 시험지를 찢어버리는 학생들도 가끔씩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통계를 가르치던 어느 학기에 제 전공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서 수업 시간에 이 얘기 저 얘기 시도해 보던 중이기도 했고요.
중간고사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화이트보드에 아주 큰 원을 그렸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라고 해봅시다."
그리곤 그 원 안에 또 다른 작은 원 하나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럼 학생으로서의 여러분은 이 정도쯤 되겠지요?"
두 번째 원 안에 다시 작은 원 하나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학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요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세 번째 원 안에 손톱만큼 작은 원을 그렸습니다.
"이번 학기에서 차지하는 이 수업은 이만큼일까요?"
마지막으로 그 손톱만큼 작은 원 안에 점을 찍었습니다.
"그럼 이번 중간고사는 이 수업에서 요 정도 될 거예요.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당장 힘들어하는 어떤 결과라는 것들은 인생 전체로 놓고 보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이 점수 결과에 관계없이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죠. 그러니 힘내세요. 중간고사는 못 봤을 수 있겠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과제도 세 개나 남았고 점수 비중이 더 높은 기말고사도 있습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일러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기까지 얘기하니 학생들 표정이 좋아진 느낌입니다. 이제 마무리하고 수업을 마쳐야겠다 싶어 마지막 멘트를 날렸습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그 시험지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우주가 간질간질한(우주의 티클만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곧이어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얘기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표현인데요? 우주가 간질간질하다고요? 무슨 의미죠?"
'얜 뭐지?' 저 역시 고개를 갸웃합니다.
"처음 들어봤다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우주가 간질간질한 것 같이 아주 작다는 뜻이죠."
"음...... 간지럽히기?"
"네 간지럽히기."
그러자 질문을 했던 학생은 양손과 어깨를 들어 올리며 이해하지 못했다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흠... 한번 찾아보세요. 그럼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무슨 상황이었는지 깨닫고는 이불킥을 날렸습니다(학생들, 용서해 주게나!). 눈치채셨나요?
'우주의 티끌'을 말하기 위해 'dust'나 'speck'이 아니라 'tickle(간지럽히다. 간질간질하다)'이라는 단어를 썼던 겁니다.
티끌 = tickle.
A tickle in the universe. 입에 착 달라붙는 표현입니다.
이 해프닝과 같이 그렇게 우리말과 영어의 경계마저도 허물어지며 미국에서의 생활에 하나 둘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