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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Feb 06. 2023

0.001%의 확률에도 희망이 깃들어 있다면

희망고문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문'이라 표현하겠지요. 꿈을 좇다 보면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다른 걸 시작해 볼까?'라는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막연한 불안감과 의심이 엄습해 옵니다. 그 방해공작을 이겨내면서 목표를 향한 노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지와 용기란 작디작은 가능성에서 발견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 질긴 마음입니다. 희망이란 마치 캄캄한 방 안에 있는 아주 희미한 빛과도 같아서, 눈 감아버리면 완전한 어둠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얘기하는 '성공 확률이 높다', '성공 확률이 낮다'라는 표현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도해보지 않고 이런 확률적 판단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확률과는 별개로 누군가는 끝까지 도전하고, 누군가는 포기합니다.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물론,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그것은 포기가 아닌 현명한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전을 거듭한 사람들 중 더러는 원했던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더러는 끝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흘러서 지나 온 날들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는가?', '나는 내 삶에 대해 간절했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이란, 그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간절함이며, 의지와 용기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저만치에서 빛나고 있는 그 무엇입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박사 2년 차를 마친 여름, 대망의 결혼을 했습니다. 저를 믿고 미국으로 와준 아내를 봐서라도 지난 2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 다짐하던 참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박사 3년 차 첫 연구미팅에서 지도교수님이 뜻하지 않게 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확률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나름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신 것이지요.


"교수님, 한국에서 결혼식 잘 올렸고 아내도 이곳 생활에 잘 적응 중이에요."

"축하하네. 좋을 때구만.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네, 2015년엔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생각입니다."

“음...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교수가 될 확률은 0프로네.”

"네? 방금 그 말은…'불가능'이라고 말하신 겁니까?”

“뭐, 불가능은 아니겠지. 0.001% 정도라고 수정하겠네.”

“0.001%면 상당히 낮은데요. 0.1%도 아니고 0.001%라고요?”

“그래, 딱 0.001%. 내 말은, '만약' 자네가 지금 상태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 정도쯤 된다는 말일세. 어디까지나 조건부야. 지금 당장 뭔가 변하거나 목표를 수정해야 할 걸세.”


<지도교수(좌)와 교수될 확률 0.001%의 지도제자(우)>


지도교수님의 연구실 문을 나서며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잘하고 있다고,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시던 지도교수님이 정색하고 얘기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2년 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는 어림없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결혼 축하 덕담이 0.001%라니요. 0.001%는 10만 분의 1의 확률입니다. 


이루어질 꿈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만큼 불확실할 수 있다 (Brett Butler)


그 당시는 논문에 쓸 수 있는 결과가 잘 나오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감도 있었고 심리학의 선두주자인 미국에서 공부한 뒤 심리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박사 3년 차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써가면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반려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예전만큼 연구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잡생각이 슬슬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박사 5년 차가 되었고, 몇 년간 스스로 공부하는 그 길고도 기약 없는 박사과정을 지나면서 저처럼 자존감 높고 긍정적인 사람에게도 자기 의심의 날이 기어이 찾아왔습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연구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 같은 사람이 박사가 되어도 되나?',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감을 잃자, 저를 믿고 온 아내와 가을이면 태어날 아이에게도 미안했습니다. 제 안에서 자기 의심과 의지 간 팽팽한 싸움이 한동안 지속됐습니다.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가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동시에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 주더군요. '나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넌 할 수 없어'라고 떠드는 자기기만의 목소리를 떨쳐버리려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는 멀리 보면 성장을 위해 지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신앙의 힘도 컸습니다. 신이라는 절대자의 계획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하니 불안해할 이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긍정!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지금 들어와 있는 이 인생의 터널을 통과하고야 말리라 다짐하면서 박사과정 중 바닥을 쳤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4년제 대학만 2800개가 넘습니다. 그중 어딘가 제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지도교수님이 제시한 그 10만 분의 1의 확률로 교수가 되었죠. 지도교수님은 그때 0.001%를 얘기했지만, 0과 1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둘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만약 자네가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줬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만약'이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희망의 끈을 잡고 있기가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긴 시간동안 학생으로 지내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하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둡고 무섭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요.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현재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비록 불안과 의심의 장애물이 수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애물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빛나는 목표가 장애물 너머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한, 기어이 그곳으로 가야겠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희망일 것입니다.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속담)
Hope is the last thing ever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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