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드리고 마음을 표현하세요
최근 임영웅 콘서트 티켓이 암표로 최고 550만 원가량에 거래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자식보다 임영웅이 낫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이 최고의 효도 선물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간 가수 임영웅이 보여준 선한 이미지와 홀어머니를 위하는 효심에 감동한 많은 부모님들이 그의 노래에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식보다 임영웅이 가치 있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임영웅은 효용이 높은 '이상형 자식' 쯤 되겠군요.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와 인터넷만 있으면 임영웅이 효도를 합니다. 반면 자식은 수십 년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웠지만 본인들 사는 게 바빠 잘 찾아오지도 연락하지도 않습니다. 아프고 적적해도 행여 걱정을 안길까 자식에게 얘기도 제대로 못 합니다. 늘 부모의 마음이 자식의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나 봅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임영웅이 정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네요.
그래도 자식은 임영웅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해줍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마음이 가는 것은 소중한 자식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 자식들이 어떤 마음으로 부모님 세대가 임영웅에 환호하시는지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본다면 분명 임영웅보다 나은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사드리는 자식은 이미 임영웅보다 나은 자식이 맞습니다.
다행히 효도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효도란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닌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부모로 하여금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게끔 해드리는 것이니까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같이 먹을 붕어빵 몇 개를 사 들고 찾아뵙는다든가, '비가 많이 와서' 혹은 '날이 화창해서' 등의 사소한 이유로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을 위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임영웅보다 나은 자식이 됩니다. 임영웅보다 나은 자식 되기가 이렇게 쉽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어떤 효자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꽤 유명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국에 소문난 효자가 있어 어떤 특별한 효도를 하는지 궁금했던 한 사람이 그 집 앞에 찾아갔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려니 효자와 그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오는 게 아니라 백발의 어머니가 아들을 업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소문난 효자가 되려 노모에게 업혀 오는 어색한 광경에 깜짝 놀란 그 사람이 "이런 불효가 어디 있나!"라며 호통치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효자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업어 주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부모님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게 해 드리라는 의미이겠습니다. 저는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반찬을 해주십니다. 고생해서 농사지어 직접 짠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듬뿍 뿌려주시는데 안 받아 올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드리는 효도가 더 좋겠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만드신 음식을 일단 감사히 받아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효도가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대개 부모님이 떠난 후에 두고두고 사무치게 후회하게 되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제22대)는 대학 졸업 후 어머니를 20여 년 간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20년이나 어머니를 모신 효심 지극한 그분도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나는 떨어진 감을 주워 먹기 위해 자고 나면 감나무에 달려가곤 했다. 한번은 아주 잘 익은 감이 개똥 바로 옆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꺼림칙해서 먹기는 싫은데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결국 어머니께 드렸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부모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 사랑은 이렇게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개똥 옆의 감을 드린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후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깊다. 나는 지금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을 내 서재에 두고 있다. 다듬이와 방망이, 입으시던 옷, 길쌈하시던 도구들, 다리미와 인두, 비녀와 틀니, 돈주머니와 주민증, 사망진단서 등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볼 때마다 '좀 더 잘 모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되새긴다.
-박승 <어머니와 감나무> 중
자식의 부모 사랑이 부모의 자식 사랑에 못 미치니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고 한번 더 인사드릴 때마다 나중에 부모님이 떠나시고 난 뒤에 느낄 후회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리고 함께 보내는 지금이 그만큼 의미 있게 느껴지게 됩니다.
효(孝)라는 개념이 옅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사람 사는 곳의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정말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세요.
만일 우리 인생이 단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 크리스토퍼 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