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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Apr 29. 2023

어느덧 바람이 따뜻해졌네

나는 멈추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난 1월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나의 길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 나는 그러한가.


길을 잃었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지금 나는 길을 잃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그 어느 때보다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해 나갈 수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처음 시작은 뚜렷했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편집하겠다는 나의 원대한 계획은 사라졌다.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시간만 막연히 흘러 봄을 맞이했다.


분명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 앞에 든든했던 나 자신이었는데 이 따스하고 보드랍게 안아주는 바람 앞에 선 지금은 왜 이렇게 작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고요하고 깊은 밤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어둡고 캄캄한 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새벽이 오는 것처럼.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아주 조용하고 느린 속도로 나의 밤이 지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 이렇게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불안과 우울에 휩싸여 추락하는 것이 아닌 그저 흘러가는 것들을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저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어요."


요즘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무직으로 산지도 어연 4개월 이제 나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만나면 이렇게 물어본다. '그래서 이제 뭐 하려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짧은 정적이 지날 동안 고민하다가 다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 대답한다. 사람은 나이에 따른 주어진 과업이 있고 그 과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글쎄요. 조금 더 알아보다가 취직해야죠.'라고 말하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려고요.'라고 말한다.


흐르는 세계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르는 것. 거대한 강물을 따라 흐르는 물 한 방울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나의 선택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한 세대를 사는 동안 나를 책임지며 살았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자유의 한복판에 내던져지니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나를 책임지는 '선택'을 한 적이 없었구나. 그저 그 시간대의 역할에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호불호에 따라 미래를 선택해 놓고선 그것을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자만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어른이 되면 삶이 안정적인 줄 알았다. 든든하고 확실에 찬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줄 알았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아주 어리석었던 어린 날의 나는 나를 그렇게 과대평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의 미래를 그리는 것이 괴로워 모든 것을 회피하고 묻어두고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을 줄이야.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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