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고 너무 낭만적이다.
박민정과 시선을 교환한 직후 든 생각은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었다. 분명 오사카행으로 가고 있던 전철에서 내려 반대편에 있는 전철을 탔는데, 어째서 우리는 계속 그 오사카행으로 가고 있는 걸까? 2번이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원래 가려고 했던 마트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멀어짐이 순간순간이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덜커덩-덜커덩하는 전철의 소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노선의 다음역은 어디일까.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전철이 오사카를 가든, 나라를 가든, 교토로 돌아가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젠 구글지도도 필요 없다. 그냥 가는 거였다. 그저 내가 돌고 돌아 다시 안전하게 숙소로 돌아가기만 빌었다.
느린 소음을 내며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던 전철에서 곧 안내음이 울렸다. 곧 다음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멘트였다.
"여기서 내리고선 아예 지하철을 빠져나가서 숙소로 가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자"
그래, 그게 맞았다.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였다. 애초에 지하철노선을 잘못 탔었다. 노선이 잘못되었던지, 방향이 잘못되었던지 잘 모르지만 뭔지 몰라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 맞았다. 친절한 구글지도는 처음부터 제대로 노선을 알려주었는데, 그저 구글지도가 이상해서 잘못 가리키고 있다고 무시한 내 잘못이 맞았다.
역에 도착한 지하철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쫓기든 내렸다.
우리가 내린 지하철역은 간이역처럼 작았다. 일본 시내 중심에 연결된 거대한 지하도시로의 역이 아닌 지상으로 오고 갈 수 있게 만들어진 작은 역이었다. 작은 역이니만큼 최소한 그곳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고 안심하며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개찰구를 빠져나가 반대편 플랫폼으로 향하려는데 민정이가 날 불러 세웠다.
"언니, 여기 유명한 사찰이 있다는데?"
우리가 내린 역은 주쇼지마역이었다. 기온시조역에서 게이한본선을 타고 11분이 걸리는 주죠지마역 보통 우지로 가는 길에 들르는 환승역이거나 근처에 있는 사케 박물관에 방문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라고 한다. 민정이는 핸드폰으로 구글지도를 열어 현 위치를 켜놓고 지도 주변을 확대했다 줄였다 하며 인근 관광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냥 여기도 구경하고 가자."
계획 없이 방문하게 되어 아무 정보도 없었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 또한 여행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개찰구를 나가니 바로 연결된 쇼핑거리가 나왔다. 조금 전까지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케이드는 조용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교토 시내의 시끌벅적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조용하게 길을 오가며 저마다의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야채상점에서 야채를 사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거리에 진열된 옷자락들을 들추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길을 오가는 자전거들 사이로 저녁장을 보고 있는 주부의 모습을 엿보았다. 자전거 뒷좌석에는 아이용 시트가 있고, 앞바구니에 쌓인 바구니들을 보며 왜인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아케이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케이드는 끝나고 상점가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직 오후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상점들은 다들 셔터를 내리고 저녁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리가 온통 문을 닫은 느낌이 들어 황량했지만 그마저도 조용하고 좋았다. 한참을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어디서 조용한 소란스러움이 밀려들어왔다.
작은 깃발을 선두에 두고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은 이 주쇼지마를 여행하고 있는 일본인 단체여행자들이었다. 그들은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단체 여행객들이 떠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의 크고 작은 무리들이 우리와 함께 이곳을 걷고 있었다. 혹시 이곳은 일본인들이 찾는 숨겨진 교토의 여행스팟이었을까.
조금 걷다 보니 상점가를 지나 작은 하천이 나왔는데, 그 하천에는 나룻배를 탈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작은 하천에 어울리는 작은 나룻배인데, 긴 대나무를 노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배였다. 그 하천 위에 세어진 다리에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풍경과 느긋한 뱃놀이 그리고 잘 어우러진 자연풍경들. 이곳이 바로 관광지가 아니면 어디가 관광지일까?
내가 진정으로 즐기는 그곳이 바로 여행지이자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상점가와 상점가를 지나서 만나는 하천과 공원.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널따란 신사. 이 정도면 꽤 훌륭한 관광코스가 아닐까. 실수로 이곳을 방문했든, 진정으로 이곳에 오길 원해서 왔든 결국은 똑같았다. 이곳을 돌아보며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민정아, 생각해 보니까 우린 여기에 방문하려고 지하철을 잘못 탔던 것 같아!"
심지어는 이곳에 위해 지하철을 두 번이나 잘못 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한 우주의 여정이었달까.
그런 낭만이 가득 차 올랐던 시점, 숙소를 돌아가는 길에 또 지하철을 잘 못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