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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Oct 13. 2023

일본에서 고장 난 인간내비게이터

지하철이 왜 여러 개죠. 머쓱타득

저는 앞으로 인간내비게이터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길 찾기 귀재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항상 여행온 초행자라는 사실을 명심하겠습니다.


박민정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어느 날 내 일기장에 적었던 문장이다.


내가 성인이 된 직후 일본 엔화가 100엔에 900원대로 떨어지면서(엔저) 엄청난 일본여행붐이 일었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일본여행을 은 한 번쯤은 다 다녀왔을 정도로 너도나도 일본여행을 다니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일본여행 커뮤니티나 여행책을 보면 사철이 많은 일본에서 지하철 타는 게 복잡하니 꼭 잘 살피며 다녀야 한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네비게이 터니까.


스스로가 길을 잘 찾는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고, 워낙 잘 안내해 주는 구글지도 덕분에 길을 잃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하철 노선도 색별로 표시도 해주고, 지하철역도 외국인이 읽을 수 있게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표시되어 있으니까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었다.


전혀 문제가 없었다. 워낙 일본여행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기에 잘못가도 다시 수습할 수 있는 정도였다. 심지어 관광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일정금액만 내면 지하철을 무제한을 탈 수 있는 교통패스권도 판매하고 있어서, 100번을 잘못 타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일본 현지인 삽가능 아닐까?"


원하는 장소를 구글지도에 넣고 노선을 확인하면 딱딱 눈에 띄었다. 어디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서 내리면 되는지 금세 이해가 되었다. 이게 바로 신이 나에게 준 재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을 제법 잘 찾았다.

박민정의 얼굴을 보호합니다..

모든 실수는 그런 자만심이 불러오는 것이 맞나 보다.


박민정과 교토에 일주일가량 머물던 나의 일이었다. 일주일을 교토에 머물렀으니 나의 자만심은 더 하늘을 찌를듯했다. 몇 번이나 다녀본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이쯤 되면 교토 관광지를 통하는 대중교통은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다.


구글지도와 교통카드만 있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별다른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 우리는 매일밤 다음날 어디를 갈지 정했는데, 그날은 교토 교토시내를 방문한 다음 후시미이나리역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숙소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한 시간을 걸어 도착했다. 1시간이나 걸어 꽤 피곤하다고 생각했지만 피곤함 또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내 속도에 맞춰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교토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걷는 길. 느리게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한 시간을 걷고 도착한 시내에서도 계속 걸었다. 방문해보고 싶은 상점들을 하나둘씩 들어가 보며 우리는 나름대로 여행을 즐겼다. 기온을 만족할 대로 즐긴 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후시미이나리역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가는 것.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가려는 마트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탄 뒤 후시미이나리역에서 내리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지도를 슥하고 본 뒤에 별 고민 없이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지하철역 표시가 있는 곳에 다다른 뒤 구글맵을 다시 켰다. 현재위치와 구글이 안내한 지하철역이 위치가 맞는지 확인했다. 내가 있는 위치가 지하철을 타야 하는 곳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내 기준 오차범위 안에 있기에 별생각 없이 민정이를 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민정아, 여기서 후시미이나리역까지 타고 가면 된대. 거기서 내려서 조금 걸으면 마트가 있어."

지하철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지하철을 기다리니 '쾌속'이라고 적힌 지하철 한 대가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쾌속이면 중간에 역 몇 개를 지나쳐 빠르게 운행하는 열차였다. 잠시 고민을 했다.


"박민정, 이거 열차 쾌속인데 그냥 탈까?"

"타도 돼?"

"나도 잘 모르는데, 후시미이나리역이면 관광지니까 멈추지 않을까?"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말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역을 일본사람들이 그냥 지나칠리는 없다고. 분명히 쾌속이지만 후시미이나리역에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름 여행잔뼈가 굵어진 박민정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쾌속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서도 구글지도를 계속 들여다봤다. 만약에 후시미이나리역에 멈추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구글지도의 파란 점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처음에 지하철역이 살짝 비껴나간 것은 오차였다는 듯이 노선이 조금 비껴가긴 했지만 노선과 비슷한 방향으로 잘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있으니 지하철 안내방송이 나왔다.  


"乗客の皆さん。 この列車は快速列車として大阪に向かいます。"

(승객 여러분, 이 열차는 오사카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열차는 오사카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의 안내방송이라는 것은 알았다. 갑자기 내 몸의 어디 한 부분에서 응급상황을 알렸다. 이대로 가만히 타고 있으면 생뚱맞게 오사카에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글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구글지도를 확인하니 구글지도가 안내해 준 노선을 한참 벗어나있었다. 후시미이나리역을 지나 오사카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망했음을 감지하고 옆에 있던 박민정에게 말했다.


"야, 우리 큰일 났어. 이대로 오사카 갈듯. 지하철 잘못탐"


애초에 지하철을 잘못 타고 이동을 했던 것이었다. 부랴부랴 내릴 준비를 하고 다음역에서 바로 내렸다. 지하철을 내리니 감사하게도 내린 지하철 반대편에 정차하고 있는 지하철 한 대가 있었다. 지하철 없는 도시에 사는 사람의 짧은 소견으로는 '내가 내린 지하철의 맞은편에 있는 지하철은 반대로 갈 것이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 지하철로 옮겨 탔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지하철 바로 있어서."

"그러게. 이거 타면 다시 교토 갈 수 있겠지?"


잠시 머문 지하철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내린 지하철의 노선대로.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오사카로 가는 노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박민정과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했고 바로 무언의 한 가지를 주고받았다.


'망했다.'


처음으로 일본에 있는 수많은 지하철회사의 위험을 몸소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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