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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Jun 02. 2023

내가 밥을 못 먹은 이유

동생도 일본은 처음이라

한 때 내가 일했던 곳은 엄마뻘인 분들이 주를 이루던 곳이었다. 여럿이 모여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곳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의례 하는 순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호구조사. 이름을 기본으로 나이, 남자친구의 유무, 술을 좋아하는지 등 자동으로 100문 100답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100문 100답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가족구성원에 대한 질문이다. 손과 눈은 쉬지 않은 채 귀만 열어 놓고 새로 온 신참에게 묻는다.


"그래서 형제는 어떻게 돼요?"


"아, 그래요? 형제가 3명이라고요?"


"네. 딸 둘에 아들 하나구요. 아들이 막내예요. 여동생, 남동생이요." 




딸 둘에 아들 하나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는 무엇이든지 처음을 공유하고 함께했다.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도, 동생이 처음 학교에 등교할 때도 그랬다. 여자중학교를 들어간 나를 따라 동생도 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입은 교복을 물려받진 않아도 나와 같은 교복을 입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여행이 처음이듯 동생도 여행이 처음이라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바리 곤듀님 두 명이 어설프게 준비한 여행은 어떻게든 굴러가긴 굴러갔다. 


밤 비행기를 타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일본에 도착한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이었다. 새벽 1시 조용한 일본 주택가를 언제 사뒀는지도 모르겠는 바퀴 2개짜리의 낡은 캐리어를 끌고 걸었다. 탈탈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캐리어를 끌었다 들었다 하며 늦은 밤 교토의 한 숙소에 도착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한 내 공간이 된 작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싹 풀려 그날은 세상이 반으로 쪼개져도 모를 만큼 꿀잠을 잤다.  


본격적인 관광을 하는 날이 되었다. 교토에 있는 모든 관광지 도장을 깨겠다는 의욕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다. 도착한 직후에는 따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서인지 배가 몹시 고팠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자마자 근처에 있는 일본 편의점으로 돌진해 일본 편의점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들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을 간단히 사서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아, 삼각김밥은 한국이랑 별 다를 게 없다'느니, '일본 편의점 샌드위치는 왜 이렇게 내용물이 실하냐'며 감탄을 하며 가볍게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던 21살의 내가 짠 일정은 휴식없이 오직 관광, 관광, 관광으로만 짜여진 일정이었다. 튼튼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러울 나도 힘들었는데 툭치면 주저앉을듯한 허약한 체력의 소유자인 동생의 피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된 건 쉬는 일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장소인 야사카신사 주변을 거닐 때였다. 야사카 신사 앞으로는 정말 많은 가게들이 있다. 기념품가게, 드럭스토어, 맥도널드, 모스버거, 카페, 편의점등 원하는 무엇이든 구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 야사카 신사가 있는 주변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고 나니 아침에 먹은 밥은 이미 위에 남아있지 않았다. 배가 고프진 않지만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배고픈 거였지 우리가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평소 내가 먹는 거에 절반만 먹는 동생은 배가 고프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슬쩍 동생 눈치를 보았다.


"민정아, 우리 이 근처에서 뭐라도 먹을까?"


동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난 배 안고픈데"


1차 식사제안이 거절되었다. 괜찮았다. 아직 배가 미친 듯이 배고픈 건 아니었으니까. 허기짐을 침으로 삼키며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야사카 신사 이후에 방문할 곳은 기요미즈데라(청수사)였다. 교토의 대표관광지로 유명한 이곳은 단순히 기요미즈데라 신사 하나만 유명한 것이 아닌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 자체도 유명했다. 고즈넉한 세월의 멋을 담고 있는 일본식 목조 건축물과 일본 전통의상 입고 총총 걸어가는 관광객들이 함께 만들어낸 조화. 그런 조화를 더욱 빛내주는 길거리 음식들. 교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떡과 녹차맛 아이스크림 등 배고픈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정말 많았다. 위의 배고픔이 아닌 시각적 허기짐에 잠식된 나는 매의 눈으로 메뉴를 스캔했다.


"민정아, 우리 저 녹차 아이스크림 먹어볼까?"


동생에게 물었지만 내 몸은 이미 녹차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싫어."


동생은 여전히 배고프지 않았다.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유혹하는데, 동생은 굳건히 넘어가지 않았다. 기요미즈데라의 끝에 올라갔어도 배고프지 않았고 그 길을 내려올 때에도 입맛이 없었다. 밥은 둘이 먹는 거지 혼자 먹는 건 아니기에 나는 배고픔을 참았다. 아니 사실 음식점에 들어가서 '혼자만 먹을 거다'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낯선 타지에서 함께해야 했다. 내가 배고프고 동생은 배가 불러도 같이 굶거나 같이 먹어야 했다.


기요미즈데라를 떠나 교토역에 도착해 도지(사원)에 방문할 때도, 수많은 드럭스토어를 지나다니며 구경할 때도, 교토타워에 올라 야경을 감상할 때도 동생은 여전히 배가 불렀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들른 편의점에서 나는 폭주했다. 처음 보는 감자칩, 몇 개 남지 않은 도시락, 일본에서 유명한 모찌롤, 롤케이크 등 손에 집히는 대로 샀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음식들을 가득 담에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데워준 따뜻한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데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다던 동생 역시 나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었다. 평소에 먹는 것보다 빠르게 많이 먹고 있었다.


"근데, 민정아 너 배 안고프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나 배고팠어."


하루종일 배가 안 고팠던 동생이 하기엔 부적절한 말이었다.


"근데, 식당에서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못 갔어. 주문하는 게 무서워서."


그렇다. 나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처음인 동생은 내가 입국심사를 받기 전까지 긴장했던 것처럼 동생은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자체가 동생의 검은 방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람 간의 상호작용 자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동생은 '주문'을 해서 먹어야 하는 곳에 음식을 주문하는 곳에 발을 내 디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잖아. 무서워"


편의점에서 원하는 것을 장바구니에 담아서 결제만 해온 음식을 입에 넣으며 오물거리는 동생이 말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었다. 




그날 저녁에 산 저녁들. 감자칩, 도시락 2개와 2만보 넘게 걸은 다리의 휴식을 풀어줄 휴족시간.

그리고 온돌없는 시린 밤을 보내게 해줄 핫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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