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할 줄 몰랐던 우리 가족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처럼 외로움도 대물림이 된다. 엄마가 유독 우리에게 미안해하면서 서운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표현부족'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무뚝뚝하게 키운 것처럼 엄마도 할머니에게 사랑을 표현받지 못하고 자라셨다.
엄마는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 가난한 시골마을의 장녀였다. 일을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해야 했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그렇게 엄마는 또 어린아이의 이름을 한 어린 엄마로 삶을 살았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엄마는 이미 한 가정의 어른으로 자랐다.
나 또한 그런 엄마의 아래에서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랑젬병의 어른으로 자랐다. 누군가에게 솔직한 말을 표현하는 것을 낯간지러워하거나 누가 나에게 사랑한다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징그럽다고 여겼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고 불편하며 민망해했다. 나이가 들며 더욱더 나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고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일들을 회피하거나 진짜 깊은 속이야기는 하지 않은 겉 이야기로 상황을 모면하기 바빴다.
내가 가진 아주 나쁜 습관중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버림받았다고 여겨질 때마다 항상 부모님 탓을 하는 것이였다. 관계 속에서 생기는 불편감을 모조리 엄마 탓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제대로 사랑을 주지 않아서 내가 사랑도 제대로 모르고, 매일 결핍과 외로움만 느끼며 산다며 제대로 사랑을 해주지 못한 부모님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들은 걸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가며 나도 스물여섯 어렸던 초보 엄마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난한 집에 장녀로 태어나 살림밑천 그 자체였던 한 여자의 고독하고 외로웠던 삶과 그 여자의 전부였던 가족이 가지는 의미를 말이다.
얼마 전에 문득 엄마가 나에게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내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간 내가 엄마로부터 학대받고 상처받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피해자의식으로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대로 나에게 끝없는 사랑과 지지 그리고 격려를 보내주고 있었다. 엄마가 '나는 그래도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줬다'라는 말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깊게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준 헌신과 사랑이 내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엄마에게 '고맙다'라고 생각만 하고 말았겠지만 이날은 엄마를 꼭 껴안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그래서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라고 말이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엄마가 우리에게 표현하는 '다른 집애들은 엄마한테 용돈도 주고 그런다는데 너네는 왜 그런 것도 없니'라고 말하는 게 사랑의 언어로 번역되어 들렸다. 엄마언어를 사랑의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다른 집 애들은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표현도 잘하는데 왜 우리 집 자식은 그런 표현 하나도 없는지 서운하다]는 말이었다.
그간 엄마만의 표현으로 '외롭고 서운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마음도 모르고 엄마의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 나는 엄마를 원망만 했었다. 누군 용돈을 안 주고 싶어서 안 주는 줄 아냐고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만났고, 어색했지만 엄마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했다.
'엄마, 그동안 우리가 용돈 안 줘서 서운했지? 엄마는 그냥 자식한테 살가운 표현을 듣고 싶었던 거였는데, 그런 표현도 제대로 못 들어서 서운했지?'라고.
엄마는 그제야 엄마의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맞아. 나는 너네가 용돈 안 주는 거에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표현을 안 하는 거가 좀 그랬지.'"라고.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따뜻한 날이다. 우리 집에도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