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고 싶지 않다의 속뜻 : 널 사랑하고 싶어

by 방망디


버림받는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해보니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그를 안전히 사랑하고 싶기에 버림받을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안전지대'에서만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상대를 사랑한 만큼 상대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상대를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만큼 나는 나 자신도 사랑했기에 내가 상처받는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사랑만큼의 높은 경계심이 내게 자라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것이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방법이었다. 나는 이것 외에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에 나를 고립시켜서라도,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주고 싶어 했다.


타인의 사랑, 인정, 존중은 모두 내가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미끼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경게심에 '나는 사랑이 필요해.', '나는 인정이 필요해.', '나는 존중이 필요해.'라며 다가가길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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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보호자가 경계심을 내려놓는 법을 1:1 등가교환식으로 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타인의 인정, 존중,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것은 내 안에 충분히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나는 그들을 더 알고 싶어 했고, 그들과 충분한 교류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내가 지구에 속한 존재이자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어 했다.


어리석은 나는 작은 자아(왜소한 나)에 갇혀 내가 가진 큰 자아(참자아)의 뜻을 알지 못했고, 나의 작은 자아는 나를 위한 나만의 보호자를 만들어 내가 가진 두려움, 불안함, 불편함을 애초에 만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만이 오로지 내가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몰랐고, 타인의 눈, 마음, 몸의 소리를 왜곡해서 들었다. 왜곡된 시야는 나처럼 서툰 그들이 내게 하는 이야기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그 이야기들에 상처받고 도망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나처럼 그저 타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이 서툴었을 뿐인데 말이다.


작은 자아가 아닌 큰 자아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들어보면 그들의 마음이 이해 간다. 그들이 가진 표현 속에 있는 불안, 슬픔, 두려움등이 내게로 전달되어 느껴진다. 그들 역시 누군가를 버리고, 비난하고, 상처주기 위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 왜곡된 자아가 그 이야기들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나는 버림받았어.', '거절받았어'라며 그 에너지를 더 크게 증폭시키고 앞으로의 사랑의 길을 차단시켜 버린다.


내 말이 맞지? 세상을 더 경계심 어리게 쳐다보면 네가 이렇게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야. 이번 상처를 잘 기억해 둬. 다음에 또 상처받기 싫으면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사실 그들에게 상처받기 두려운 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싶었다는 걸. 내가 그들의 삶에 함께 녹아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이 날 거절하는 게 두려웠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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