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부터 이어진 엄마와의 스토리
10일간의 명상코스를 참가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보고 지나갔는데 그중 한 가지가 '엄마와의 관계성'이다. 10일 내내 엄마에 대한 감정이 떠나지 않았다. 때론 분노했다가 절망했다가 연민하고 이해하기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에는 현시점에서 엄마와 관계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기에 내가 이토록 고통받고 있는지 뿌리를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7 차크라 각각에 새겨진 전생들이 뚜렷하게 보여서 이 생각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되든 안되든 한번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는 깊은 연결이 있는지 여러 날에 걸쳐서 전생을 보았다. 가까운 과거부터 고대까지 이어진 이야기였다.
처음에 보인 것은 무대 뒤편에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이 든 중년은 어린 소녀 어깨 위를 도닥이며 지금까지 배운 것을 잘 펼치고 오라고 응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그 긴장한 듯 보였지만 잘 해내 보이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위풍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 이어진 전생은 유모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첫날 보인 이 두 가지 모습에 나는 단순히 엄마와 나는 '스승-제자' 혹은 '보호자-피보호자'의 관계였나 보다고 생각을 했다.
그 두 가지 스토리에서 내가 읽힌 것은 어린아이는 그 어른을 무척 따르고 좋아했으며, 어른은 어린아이가 빛나는 성공을 쥘 수 있는 길을 닦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과해져 어느 날부터 아이는 어른이 제시한 길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동안 나는 과하게 엄마를 만족시키고,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살았는데 이 패턴은 이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기대에 만족시키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삶,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직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한 패턴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다음 날 또 몇 가지 스토리들이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한 신전이었다. 파란색 피부를 가진 신을 모시는 것처럼 보이는 신전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죽음과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였다.) 이 신전에서 엄마와 나는 사제로 있었던 것 같다. 이 사제시절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카르마가 엮인 것으로 보였다. 그 뒤에는 이집트 토트의 신전에서 사제로 일하는 모습 역시 보였다.
카르마 씨앗을 보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아서 냅다 토트와 오시리스에게 카르마 서약이 해제되기를 기도했다. 기도하고 나니 호루스의 눈 이미지가 보이며 고대 서약이 보였다. 후에 에너지로 읽히기엔 이 카르마의 씨앗은 지금의 너무나 큰 에너지(신의 금기 느낌이었음)여서 인간인 나는 볼 수 없어 보였다.
그렇게 엄마와 나 사이에 무엇을 배워야 할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카르마의 큰 서약을 해제하기만 했다.
명상코스를 마치고 난 뒤 몇 번의 엄마와 마찰 아닌 마찰을 겪으며 내가 엄마와 함께 공유하고 있던 '카르마 패턴'을 추측했다. 바로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엄마와 나는 유구하게 이기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한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전까지 내가 가진 사랑의 의미는 오직 하나였기에 그것이 잘못된 줄 몰랐으나 담마 코리아에 다녀온 이후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며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을 알고,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살던 뿌리 깊은 패턴을 확인하고 내 마음이 얼마나 '나'라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살고 있었는지 알아차리는 중이다.
오늘 역시 치유를 위한 상황이 현실에 펼쳐졌는데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살펴보니 상대는 엄마이자 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엄마에게서 보기 싫어하던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내가 행동하던 그대로를 상대에게 똑같이 행동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마찰 역시 그동안 엄마와 다툴 때의 모습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었다.
엄마는 딸인 내가 엄마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나는 왜 옳은 소리를 했는데 엄마의 분노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이 패턴의 반복이었다. 내가 봤을 때 엄마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엄마의 자존심(혹은 수치심)이 건드려져 나에게 위계를 강조한 분노를 쏟아내기 바빴다.
나는 늘 엄마에게 분노했고 수치스러워했다. 옳은 소리를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5 차크라 이슈)
오늘 일어난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내가 과연 '의도에 사랑이 담겼는지' 확인을 했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게 부도덕한 일이라는 걸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상대방을 수치 주고 싶어 했을 뿐이다. 네가 한 행동은 잘못됐으니 바꿔야 한다고 말이다. 정의를 표방하고 있었으나 그 속에는 '네 행동에 내가 제약을 받고 불편하니 네 행동은 잘못된 거야'라는 마음이 깔려있었고 그 마음의 기저에는 '내가 피해 보고 있어'라는 나는 절대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존재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굴었으나 결국 내 속은 내 이익을 챙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의도가 비사랑인지, 선의와 호의로 포장한 행동 속에 사실은 '비사랑'만을 가득 담고 있는지 나는 진정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사랑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웃어넘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영혼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 패턴이 일어나고 내 안에서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한동안 엄청난 기침을 토해냈다. 목을 자극할만한 것이 아무도 없는데 계속해서 마른기침이 나왔다. 온몸에서 내장을 쏟을 것처럼 격하게 기침을 하고 난 뒤에야 조금 개운해졌다. 기침이 끝나고 보니 하루 종일 따끔거리던 목이 잠잠해졌다는 걸 알았다.
권위, 위계에 의해 억압당했던 과거의 스토리가 오늘로써 종료되었다.